정부에서 연구개발(R&D)비를 지원받은 중소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기업들의 이익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수혜 기업들은 부가가치 증가분도 비수혜 기업에 비해서 적었다. 연간 3조원인 정부의 중소기업 R&D 지원액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였다는 이야기다. 퍼주기식 지원 방식과 수혜기업 선정방식 등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2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중소기업 R&D 지원의 정책효과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정부의 R&D 투자집행 총액(19조원) 중 중소기업 지원규모는 2조8,973억원(15.2%)으로 집계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R&D 지원의 성과는 민망할 정도다. 보고서는 국가연구개발사업(NTIS)과 한국기업데이터(KED)의 2010~2014년 자료를 토대로 R&D 지원을 받은 중소기업(수혜기업)과 지원을 받지 못한 중소기업(비수혜기업)의 성장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수혜기업의 2년간 부가가치(이익ㆍ인건비ㆍ배당 등 이해관계자에 분배되는 가치 포괄) 증가분은 평균 4,300만원으로 비수혜기업(1억9,500만원)의 4분의1도 안 됐다. 더구나 수혜기업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억5,500만원이나 줄어 ‘역성장’했다. 비수혜 기업이 800만원 가량 늘어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매출도 비수혜기업의 증가율은 36%나 됐지만 수혜기업은 13%에 불과했다.
수혜기업이 우위를 보인 분야는 자본과 특허 정도였다. 중소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은 후 이를 토대로 모태펀드 등에서 추가 자금을 받아(자본) 설비ㆍ인력 등 R&D 투자를 다소 확대(특허)하긴 했지만 이익 증가 등 성과로는 연결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같은 역설적인 결과의 원인 중 하나로는 수혜기업 선정 절차가 꼽힌다. 양적 지표(특허 등) 중심의 선정체계로 인해 이미 기술력이 높은 중소기업 위주로 R&D 보조금이 지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호 KDI 연구위원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은 R&D 선정에서 배제되고, 이른바 ‘사업제안서’를 잘 쓰는 성숙기업이 지원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연간 지식재산권 등록 실적이 3개 이상인 기업은 전체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 불과하지만 수혜비중은 11%로 높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부가가치는 2년간 평균 87억원이 감소했다.
이 연구위원은 “논문이나 특허, R&D 투자액 등이 아닌, 경제적 부가가치 등 경제적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중기 R&D 지원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특허 획득이 기업 성장에 저절로 기여할 것이라는 순진한 가정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대ㆍ중기 ‘전속거래’(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부품 등을 공급할 때 10년 이상 ‘장기계약’으로 체결하는 형태의 거래) 구조를 손질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속거래 구조 하에서 중소기업 R&D는 원청 대기업이 설계도면을 작성하고 협력 중소기업에 생산을 위탁하는 형태의 ‘하청’ 방식이 대부분”이라며 “중소기업 R&D의 ‘질’이 높을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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