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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까치 건축가에게

입력
2018.04.12 16:5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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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가 감나무에 집을 짓는다.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하면서 감나무 두 그루를 남겼는데 그중 한 곳에 집을 짓겠다고 난리다. 나와 건축주, 현장소장 셋은 까치가 뭘하는지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를 부리로 물어서 감나무 중간쯤에 앉는다. 나뭇가지를 이리 놓고 저리 놓아본다. 나뭇가지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되게 놓이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다 한군데를 정한 모양이다. 나뭇가지를 쌓아가는 그곳이 하필이면 주차장 바로 위다. 아이고, 거기는 안되는데. 그러나 까치는 마음을 정했는지 새똥으로 확실한 영역 표시를 한다.

인간들은 고민에 빠진다. 저기에 차를 세우면 분명 지붕이 온통 새똥으로 뒤덮일 게 뻔하다. 이 나무가 아니라 뒤에 있는 저 나무, 잔디 위로 가지를 뻗친 저 나무라면 전혀 문제가 없을 텐데. 이 녀석을 어떻게 그쪽 나무로 옮길지 한동안 고민 좀 해야 할 것 같다. 이보게, 자네도 집을 짓는 ‘건축가’라면 대지 분석이라는 것 좀 하게. 거기는 좋지 않네.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집에 나무가 있으니 까치도 찾아온다. 건물이 아무리 멋있어도 사람 눈에 그렇게 보일 뿐 새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오직 ‘나무’와 햇볕과 그늘이다. 건축주를 만날 때마다 늘 말하는 게 있다. “집의 완성은 ‘조경’입니다.”라고. 특히 나무는 땅과 건물을 이어주고 자리 잡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나무는 반드시 살려야 한다. 지금 리모델링 중인 이 집에는 원래 세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다. 지난 가을에 제법 큰 감이 열려 감을 딴다. 딴 감을 나눈다. 주인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집이 처음 지어질 때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 그루는 결국 베어내야 했다. 건물의 수직 증축에는 상관이 없었지만 마당에 따로 짓는 별동을 배치하다 보니 나무의 절반이 잘려 나가야 했던 것이다. 나머지 두 그루를 살린 것으로 위안으로 삼았다. 그곳에 새가 찾아 주니 살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든다. 사람에게도 좋은 열매와 싱그러운 풍경을 제공해 주지만 새들이나 곤충에게도 편안한 휴식처가 된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평창동에 작업한 주택도 땅에 소나무와 전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전나무는 세 그루가 집만큼 높이 자라 있었고, 땅의 입구에 자라던 V자형 소나무는 그 생김새가 특이해서 건축주와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자세히 측량을 해 보니 잘 하면 모두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저런 나무는 없애는 게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워낙 좁은 골목에 자리 잡은 집 출입구의 중앙에 버티고 선 소나무는 건설 장비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꼴이었다. 나무를 두고서는 도저히 공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나중에 다시 심기로 건축주와 의견을 맞추고 나무를 살펴보니 이게 또 불가능했다. 거의 돌로 이루어진 땅에서 자라다 보니 뿌리가 사방으로 얇고 넓게 퍼져서 나무를 암반에서 떼어 내는 게 불가능했다. 정말 땅과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린 그런 땅을 파고 건물을 앉혀야 하는 것이었다.

나무는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이 땅에 오랫동안 살아왔던 존재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막걸리를 붓고 제를 올렸다. 그나마 전나무와 잣나무는 살아남았다. 나무가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옹벽을 세우고 나무 앞까지 데크를 설치하니 더할 바 없이 훌륭한 조경이다. 일부러 한다고 해도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싶을 정도로. 집을 짓는 것은 잠시 동안 그 땅을 빌리는 것과 같다. 그 전에 이 터를 보금자리 삼았던 나무와 풀들, 땅 위의 것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어떻게든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 또한 건축가의 중요한 책임이다. 땅을 완전히 밀고 나무 몇 그루 심는 것은 조경이 아니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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