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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불법 도박 재벌’ 납치극, 여자친구 자매가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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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불법 도박 재벌’ 납치극, 여자친구 자매가 꾸몄다

입력
2018.04.12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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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도박업체 운영 남자친구와

관계 소원해지자 50억 탈취 계획

경호원ㆍ조폭 등 점조직 형태 고용

부유층 노린 강도 행각으로 꾸며

진술 번복 수상히 여긴 공판검사

수사기록 재검토 사건 전모 밝혀

지난해 4월 서울 강남의 한 스크린골프연습장 주차장. 김모(37)씨 등 3인조 강도가 고급 수입차 롤스로이스에 오르려던 A(42)씨를 뒤에서 끌어내 전기충격기로 수 차례 충격을 가하고 삼단봉으로 때린 뒤 6,000만원 상당의 명품 시계와 지갑 등 총 7,330만원어치를 빼앗았다. 하지만 주차장으로 또 다른 차량이 들어오자 달아나다 심장이 나빠 걸음이 느린 일당 중 한 명이 현장에서 붙잡히면서 3인조는 모두 경찰에 검거됐다. 딱 보기에도 부유층을 노린 강도 행각이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김씨 일당은 텔레그램이나 위챗, 바이버 같은 흔적이 남지 않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정보를 제공 받아 A씨를 납치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 사건 당시 전기충격기 전압이 낮아 A씨가 기절하지 않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추궁 끝에 김씨의 범행 제의로 직원들을 납치극에 합류시킨 경호업체 대표가 있었고, 김씨 뒤엔 일당 모집을 의뢰한 전모씨가 있었으며, 전씨에게 범행을 제안한 조직폭력배 황모씨 존재까지 드러났다. 놀랍게도 이들 윗선에는 마카오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박모씨까지 있어 배후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박씨가 끝이 아니었다. 박씨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피해자 A씨의 여자친구인 유모(30)씨와 박씨의 애인이자 유씨의 언니(31)는 진술이 어설프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검찰 조사에서 SNS 어플리케이션을 설치만 하고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재판 과정에선 다른 사람이 설치하라고 해서 사용했다고 번복하는 등 비상식적 진술이 나왔다.

유씨 자매 증언을 수상히 여긴 사건 공판 담당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 김정환(43ㆍ사법연수원 33기) 검사는 수사기록을 모두 재검토하고 폐쇄회로(CC)TV 분석도 다시 했다.

결정적 장면은 골프연습장 CCTV에서 발견됐다. 연습장을 운영하던 유씨는 사건 직전 “애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진술했는데 CCTV 분석 결과 애인과 연락하는 스마트폰이 아닌 폴더형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 김 검사의 집요한 추궁 끝에 유씨 자매가 범행을 기획한 사실이 드러났다.

유씨는 A씨가 다른 여성을 만나는 등 관계가 소원해지자 언니와 상의해 A씨를 납치하고 50억원을 뜯어낼 계획을 세웠다. A씨는 해외에 근거지를 둔 불법 스포츠도박업체 운영으로 큰 돈을 벌어 50억원을 뜯겨도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두 자매는 마카오 카지노 사업을 빙자해 유사수신업체와 환전소를 운영하는 박씨를 끌어들인 뒤 점조직 형태로 일당을 고용해서 자신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꾸몄다. 사건 당일 유씨는 SNS를 통해 “안경을 썼다” “베이지색 코트를 입었다” “이제 나간다”는 문자메시지를 순차적으로 일당에게 전달했고, 사건 당시 A씨와 동행했던 일행을 따로 불러내 범행을 돕기도 했다. 지난 9일 검찰은 특수강도 혐의로 유씨 자매를 구속기소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공소유지와 재판을 맡은 공판 검사가 재판 과정에 증인 진술의 허점을 찾아 진짜 주범과 사건 전모를 밝혀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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