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집 애들이 글쎄…” 무성한 소문이 돌 때마다 보따리 싸길 여러 번. 3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한다는 그들은 바로 ‘입양가족’입니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폭력적 시선부터, ‘훌륭한 일을 했다’며 자선 취급해 버리는 무심한 태도까지… 입양가족이 겪는 편견의 벽은 오늘도 한없이 높기만 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한국일보가 들어봤습니다.
제작: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엄마, 나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어?” 조혜숙(47)씨는 4살 배기 아들 희래의 돌발적인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조씨가 꺼낸 답변. 그러나 희래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아기는 여자의 뱃속에서 태어나. 아기집이 있는 여자가 낳을 수 있거든. 그래서 엄마도 누나도 아이를 낳을 수 있지..." 2주 뒤, 혜숙씨는 입양가족모임에서 만난 선배 부모들과 함께 고민한 답을 들려줬습니다. "희래도 여자가 낳았어. 그리고 너를 기다리던 엄마와 아빠를 만나 가족이 된 거야.”
조씨와 안중선(43)씨 부부가 희래를 입양한 건 2013년. 희래를 만나기 위해 꼬박 11개월을 준비했습니다. 첫째 딸 희랑이를 낳을 때와 둘째 아들 희래를 입양하는 과정을 비교해보니 부모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양육 의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첫 아이를 어렵게 낳아서 그런지 힘들다는 생각이 앞섰어요. 낳자마자 절절한 모성애가 샘솟지는 않았죠.” “희래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도 역시 낯설었지만 내 몸이 아프지 않아서인지 오히려 애틋한 마음이 더 빨리 생긴 것 같아요.” 내 배 아파 낳은 아이만 '내 자식'이라는 편견은 말 그대로 편견에 불과했습니다.
입양을 했다고 하면 주변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거나,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며 끌끌 혀를 하는 것. “축하 받을 일이긴 해요. 그런데 ‘착한 일’을 했다고 하는 건, 우리 희래를 너무 불쌍한 아이로 몰고 가는 거 아닌가요?“ 훌륭하다는 칭찬도 상처이기는 마찬가지.
입양가족들이 받아야 하는 불편한 시선은 상상 이상입니다. ‘입양부모는 좋은 사람이자’ ‘낳은 자식처럼 키울 수는 없지 않나’ '힘든 선택 했네' ‘언젠가 친부모를 찾아갈 꺼야’ ‘사춘기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주변의 편견은 천차만별.
이런 시선을 피하기 위해 ‘비밀입양’을 선호하는 가족들도 여전히 많죠. “나와 남편에게는 마냥 사랑스러운 아이임에도 그들은 불쌍한 아이로 대해 속이 상했어요.” 박선화(가명ㆍ50대)씨는 이웃에게 입양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싫어 아직도 3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닙니다.
입양아들이 차별적 시선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곳 중 하나는 학교. “중학생 때 담임선생님께서 ‘부모님이 직접 낳은 형과 너를 차별하지 않느냐’고 공공연하게 물었죠” 초등학생 때 입양 사실을 알게 된 김모(21)씨는 늘 친구들로부터 '가짜 엄마와 산다'는 놀림을 받았습니다.
TV 드라마에서 입양을 부정적 소재로 삼는 것도 입양 부모들에게 큰 상처를 줍니다. “대다수 드라마에서 생부모의 존재에 환상적 의미를 부여하고 결국엔 입양아가 생부모를 찾아 떠나도록 그리며 ‘혈연 중심’ 고정관념만 재생산하고 있죠” (신용운 전국입양가족연대 대표)
일부 입양아동 학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모든 입양부모’를 싸잡아 범죄자처럼 여기는 시선도 여전합니다. 실제로 아동 학대 주범은 양부모가 아니라 친부모가 압도적 비율로 더 많은데도 말이죠.
편견을 없애고자 입양부모들이 직접 나서기도 합니다. 물타기연구소가 대표적이죠.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데 물의 양이 많아지면 편견이 희석될 수 있지 않겠어요?” (홍지희 물타기연구소장)
이들은 용어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정부의 ‘입양인 뿌리 찾기’ 사업 용어에도 편견이 담겨 있습니다. “뿌리 없는 식물은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입양인들도 저마다 가족을 만난 후 성장하고 있어요. ‘옛터 찾기’라는 말이 더 적합해 보입니다" (정은주 물타기연구소 연구원)
‘입양’이라는 단어에도 사회의 잘못된 시선이 담겨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때도 ‘입양한다’는 표현을 쓰기 때문에 입양아들이 상처를 받는다는 사연이 많아요. 입양은 ‘양연(養緣ㆍ인연을 키움), 버려진 아이는 ‘해연(解緣·인연이 풀리다) 아동’으로. 부정적 언어부터 바꾸는 게 첫걸음입니다.
이들은 말합니다. '기른 정'을 통해서도 가족은 만들어진다고.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고 존중하려면 입양가족뿐 아니라 미혼모에 대한 차별적 태도도 함께 버려야 합니다."
원문: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제작: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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