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러시아 화학무기 진상조사 결의안 맞불 거부
공격 책임 주체 규명 두고 “독립 기구 신설” 이견
외교 노력 수포, 미국 등 군사 행동 긴장감 고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화학무기 시설 공격” 예고
美 언론 “해군 구축함 동원, 트럼프 남미 순방 취소”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 사태 진상조사를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이 10일(현지시간) 부결됐다.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자국의 입장을 담아 제출한 결의안이 모두 상대방의 거부로 무산되면서다. 이로써 외교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려던 국제사회의 노력은 요원해졌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과 러시아의 대립 전선만 더욱 뚜렷해졌다. 시리아에 대한 군사 응징 가능성 역시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리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미국 등 서방 진영 국가와 러시아는 서로 거부권 맞불을 놓으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결의안은 채택되지 않는다.
먼저 미국이 마련한 ‘시리아 결의안’ 에 대해,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서방이 주도하는 대(對) 시리아 결의안에 대한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이번이 12번째다.
곧이어 러시아가 제출한 또 다른 ‘시리아 결의안’이 상정되자, 이번에는 미국·영국·프랑스가 일제히 거부권을 행사했다. 중국은 미국 주도 결의안에 기권하고, 러시아 주도 결의안엔 찬성표를 던지며, 러시아 편에 섰다.
미국과 러시아 공히 겉으로는 한 목소리로 화학무기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책임 주체를 가리는 부분에서 엇갈리며 대치했다.
미국은 안보리 차원의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조사기구를 구성하는 방안을 요구했다. 러시아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러시아는 화학무기 감시기구인 화학무기 금지기구(OPCW) 차원의 조사를 진행하자고 주장했다. OPCW 측은 화학무기 사용 여부를 가리는 역할을 하되, 사용 주체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니키 헤일리 미국 대사는 “러시아가 제출한 결의안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보호하려는 목적이 다분하다”면서 “오늘 러시아가 시리아 국민의 괴물을 보호하는 선택을 내렸다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바실리 네벤자 러시아 대사는 “우리가 마련한 결의안은 진상조사 조작이 가능한 허점을 제거한 것”이라며 “미국이 국제 사회를 또다시 오도하고 정면충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시리아에 화학무기 공격이 있었다는 보도는 가짜뉴스”라며 “(미국은) 진상조사를 하기도 전에 유죄로 이미 단정해놓고 있다”고 반발했다.
결의안이 부결되면서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시리아 군사 응징 가능성도 높아지게 됐다.
실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시리아에 대한 군사 행동을 공식화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엘리제궁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프랑스가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 의혹과 관련해 군사대응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 “동맹국인 미국·영국과 함께 전략적, 기술적 정보를 계속 논의할 것”이라며 “며칠 내로 결정사항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결정은 시리아의 동맹들이 아닌 정부군의 화학무기 시설을 공격하는 것이 될 것”이라면서도 “긴장 고조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시리아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이 아니라, 정부군의 화학무기 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을 검토 중이라는 뜻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시리아의 최근 화학무기 사용 의혹과 관련해 해군 구축함을 동원한 군사공격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CNN에 따르면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13일부터 예정됐던 남미 순방을 미루고 백악관에 머물 계획이라고 전했다.
앞서 시리아 반군 활동가와 일부 구조 단체는 지난 7일 시리아 두마 지역의 반군 거점에서 정부군의 독가스 공격으로 최소 40명, 많게는 100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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