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민 대표와 남편 왕복균씨
임대차 갱신 거절로 신촌 떠나
고서 파손 우려에 하나하나 포장
보관 어려워 1만권 폐기 아픔도
“공공안심상가라 임대료 싸고
당분간 이사 걱정 없어요”
“사람들이 성수동 책방에서 ‘득템(희귀한 물건을 발견하는 것)’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을 23년간 지켜 온 공씨책방이 지난달 19일 성동구 성수동에 새롭게 자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이모부 공진석씨를 이어 1990년부터 헌책방을 운영해 온 장화민(61) 대표는 걱정과 기대를 반반씩 섞은 표정을 지었다. “수십 년 된 단골을 빼면 아직까지는 적막하다”라며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이곳을 찾게 할지”가 그의 요즘 고민이다.
장 대표는 책 전문가다. 책상 밑에서 고서적을 꺼내 든 장 대표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서경”이라며 “200년은 족히 넘었다”고 했다. 남편 왕복균(61)씨는 음반 전문가다. LP를 틀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왕씨는 “아무리 찾기 힘든 희귀 음반이라도 여기에는 있다”고 귀띔했다.
국내 1세대 헌책방인 공씨책방은 1972년 동대문구 이문동 경희대 앞에 처음 문을 연 이래로 자리를 옮겨가며 지금껏 영업을 계속해왔다. 성수동 헌책방에만 3,000여점에 이르는 헌책과 옛 음반이 36㎡ 남짓 공간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사가 덜 끝나 군데군데 비어있는 책장도 눈에 띄었다. 공씨책방이 소유한 책은 10만권에 달한다.
장 대표 부부는 이곳을 ‘성수점’이라고 말했다. 창천동에 있던 옛 책방 위치에서 30m 떨어진 건물 지하에도 공씨책방이 운영되고 있어서다. 책을 모두 옮기기에는 성수동 책방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내린 결정이다. 그마저도 모자라 김포에 창고를 빌려 1만권을 따로 보관했다. 왕씨는 “신촌과 성수동을 가족이 계속 오가느라 졸지에 이산가족 신세가 됐다”고 웃었다.
수십 년간 창천동을 지켜온 공씨책방은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치솟아 세입자가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현상)’ 때문에 이사를 갔다. 장 대표는 “2016년 10월 새로 온 건물주가 기존보다 2~3배 비싼 임대료를 낼 수 없다면 창천동 공씨책방을 비워달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소송까지 낸 건물주는 지난해 9월 법원으로부터 1심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장 대표는 뇌출혈로 쓰러져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씨책방은 항소를 포기했다. 법원에서 언제든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장 대표는 “집어 던져진 책이 길거리를 굴러다니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다”고 했다.
이사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무엇보다 공간이 부족해 1만권 넘는 책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포장도 문제였다. 종이 질이 좋지 않은 헌책은 쉽게 부스러졌기 때문이다. 결국 장 대표 부부가 하나하나 손으로 포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 대표는 “이사가 힘들어 폐업을 선택하는 헌책방도 많이 있다”라며 “전국책방협동조합 등 주변에서 도와줬기에 (이사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성수동 공씨책방은 성동구가 전국 최초로 만든 공공안심상가에 자리를 틀었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3.3㎡당 임대료가 인근의 60~70%인 5만~6만원 수준이다.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점에 성공한 장 대표 부부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장 대표 부부는 “성수동 공씨책방에도 많이 놀러 오면 좋겠다”고 수줍게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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