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 합의 뒤 압축적 단계로 이행 중요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내 완료 합의를”
노무현 정부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가 9일 “(북한이) 모든 것을 포기한 뒤에 보상한다는 (개념의)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이 원칙인 리비아식 모델은 9일(현지시간) 공식 취임하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내정자가 북핵 문제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화제가 됐다.
윤 교수는 이날 ‘북핵 위기와 정상회담-아시아 각국의 시각’이라는 주제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전문가 좌담회 기조강연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의 대가로 안보 보장, 외교관계 개설, 경제 지원 등을 원할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다루게 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모든 중요 현안을 동시에 올려놓고 포괄적인 합의를 이뤄낸 뒤 최대한 압축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에는 시간이 걸리고 단계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만큼 단계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윤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 임기(2021년 1월 종료) 전에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도록 합의를 이뤄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한 비핵화 검증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이 모든 핵 시설을 신고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언제 어느 곳이나 사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북한이 불시 사찰을 허용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중간 단계의 보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관련해서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2013년에 핵ㆍ경제 병진 노선을 얘기했는데 국제 정세의 변화와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등을 고려할 때 병진 노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적당한 가격에 핵무기를 팔아 북한 주민의 민생을 살리는 방향으로 노선 변화를 꾀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라고 밝혔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도 김정은 위원장을 대화로 유도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북한이 그 동안 모든 무역에서 중국 기업으로부터 7%의 리베이트를 받아왔는데 지난해 약 3억5,000만달러(3,743억원)의 리베이트가 감소하고 이로 인해 정부 재정과 권력 엘리트, 중ㆍ고위층 관료들의 수입이 타격을 받았으며, 올해는 북한 주민의 생계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추정이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데에 동의했다. 그는 “2017년 북한 수출이 37% 감소해 외화 수입이 크게 줄어든 결과 정권과 국가기관, 권력층의 외화난이 가중되고 있다”며 “만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제대로 집행되면 올해 북한 수출은 2015~16년 대비 90% 이상 감소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미래의 경제 위기를 예상하고 (북핵) 협상을 제의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 아시아지역 관련 연구소협의회가 주최한 이날 좌담회에는 서울대 인문학연구원ㆍ통일평화연구원ㆍ러시아연구소ㆍ미국학연구소ㆍ아시아연구소ㆍ일본연구소ㆍ중국연구소ㆍ중앙유라시아연구소 소속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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