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리설주 여사와 함께 광장에 도착하시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월 8일 건군절 소식을 전하면서 그간 ‘동지’로 불러온 리설주의 호칭을 ‘여사’로 바꿔 표현했다. 한국에선 대통령 부인은 물론 이름께나 알려진 여성에 대한 존칭으로 여사(女史)라는 표현이 흔히 쓰인다. 북한은 백두혈통의 어머니들에게만 여사라는 호칭을 써왔다.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과 생모인 강반석, 조모 리보익 등 세 명뿐이다. 북한에서 ‘동지’는 동료를, ‘여사’는 정치사회적 식견이 뛰어난 여성 활동가를 뜻한다.
▦ 과거 사회주의권 최고지도자들은 부인을 ‘철의 장막’ 뒤에 꽁꽁 숨겼다. 소련 지도자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등이 한결같았다. 부인을 공개석상에 처음 등장시킨 이는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고르바초프였다. 중국도 장쩌민 주석이 처음 부인을 해외순방에 동행했다. 김정일 위원장 역시 부인을 노출시킨 적이 없다. 넷째 부인으로 알려진 김옥이 2006년 방중 때부터 김 위원장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 퍼스트레이디 역할은 아니었다.
▦ 리설주는 서방국가의 영부인처럼 공식행사에 자주 등장한다. 정상국가의 면모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만일 그가 27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 남편과 함께 참석한다면 사상 첫 남북 퍼스트레이디 회동이 성사된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 위원장과 부인의 호칭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는 6일 리설주의 호칭을 ‘여사’로 정했다고 밝혔다. 남북 모두 최고지도자의 부인을 ‘여사’로 표기하는 만큼, “여사로 쓰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공식적인 호칭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 일각에선 ‘리설주 여사’라는 호칭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인권 유린 등 전근대적 세습왕조의 정상국가 코스프레를 받아줘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도 김정일에게 대통령의 격에 맞는 호칭을 썼다. 북한 매체는 외국 정상의 부인에게 ‘여사’라는 호칭을 쓴다.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의 부인을 각각 ‘이희호 여사’, ‘권양숙 여사’로 칭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인 2002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도 ‘박근혜 여사’라고 표현했다. 정상회담이 코앞이다. ‘여사’라는 호칭마저 반북 심리를 자극하는 정치 소재로 활용한다면 판을 깨자는 얘기와 다름없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