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를 당한 뒤 아들뻘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까지 당한 택시 기사가 경찰의 대응에 분통을 터뜨렸다. 술 마신 것이 의심되는 가해 운전자를 잡지 않은 것도 모자라 자신을 돈이나 뜯어내려는 사람으로 매도했다는 것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택시 기사 이강훈(64)씨는 지난달 22일 오전 2시쯤 경기 용인 수지의 한 골목에서 정차 하던 중 후진하는 벤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350(일명 G바겐)에 접촉사고를 당했다. 벤츠 운전자 A(31)씨와 동승자 B(31)씨는 차에서 내려 “계좌번호를 주면 다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A씨에게 술 냄새가 강하게 나자 휴대폰으로 112에 전화를 걸려고 했다.
이씨는 “동승자 B씨가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다가 주먹과 발로 때리기 시작했다”면서 “그 사이 운전자 A씨는 벤츠를 타고 그대로 도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맞으면서도 B씨가 도망가지 못하게 잡고 경찰에 ‘XXXX번 차량이 음주하고 도망간다’고 신고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B씨에게 맞아 왼쪽 갈비뼈 1개가 부러지고 얼굴과 머리 등에 타박상을 입어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음주를 한 운전자가 차를 몰고 도주했다고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뒤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씨는 “(사고가 난 지 8시간이 지난) 22일 오전 10시쯤 경찰이 전화해 ‘이 차 번호가 맞습니까’ 라고 물었고, (사흘이 지난) 25일 담당 조사관이 ‘이 차량이 무슨 차량입니까’ 라고 전화했다”면서 “음주운전인데 초동 수사를 이렇게 하느냐고 항의했다”고 경과를 설명했다.
이씨는 ‘택시 기사의 요구액이 과도하다고 생각한 B씨가 홧김에 때린 것으로 파악했다’는 경찰의 해명에 더 분노했다. 그는 “29일쯤 차주(운전자)로부터 병원에 찾아오겠다는 전화가 왔는데 거절했다. 화가 안 풀린 상황에서 계속 온다고 하길래 ‘돈으로 해결하려면 5,000만원 갖고 오라’고 했지만 사고 현장에서는 그 사람들도, 나도 돈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초동 수사를 안 해서 그 사람은 도망가고, 나중에 와서 ‘나는 죄가 없다. 음주한 사실이 없다’고 한 게 너무 억울하다”고도 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한 조사를 25일 시작해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입건했다. A씨는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어 미처 사고처리를 못했다”며 음주운전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상해 혐의로 입건됐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