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나 미술관 ‘히든 워커스’
국내외 작가 11팀 영상ㆍ사진 등
성차별 문제 등을 주제로 다뤄
“혁명이 끝난 뒤 월요일 아침에 쓰레기를 누가 치울 것인가?”
미국의 행위예술가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의 질문이다. 여성주의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유켈리스는 결혼과 출산 이후 도저히 예술활동을 지속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가사노동이 곧 예술 활동임을 선언하는 ‘메인터넌스 예술을 위한 선언문’(1969)을 발표했다. 그는 여기서 죽음과 삶, 발전과 유지, 생산과 재생산의 이분법에서 전자는 남성의 일로, 후자는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현실을 비판한다. 남자가 죽음을 노래할 때 여자는 그가 계속 노래할 수 있도록 ‘닦고 쓸고 기름 쳐야’ 한다는 사실이, 이 여성 예술가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코리아나 미술관이 개관 15주년을 기념해 여는 전시 ‘히든 워커스’는 주변에선 늘 볼 수 있으나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던 여성들의 ‘숨겨진 일’을 재조명한다. 유켈리스를 비롯해 릴리아나 앙굴로, 게릴라 걸스, 임윤경, 조혜정&김숙현 등 국내외 작가 11팀의 영상, 사진, 설치 작품 14점이 나왔다. 작가들 자신이 노동의 당사자 혹은 개입자로 등장해 1970년대의 가사노동부터 2010년의 서비스 노동에 이르기까지, 숨겨진 노동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했다.
콜롬비아 출신의 릴리아나 앙굴로는 백인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았던 흑인의 과거사를 ‘유토픽 네그로’(2001)를 통해 꼬집었다. 작가는 스스로의 얼굴에 검은 칠을 한 뒤 과장되게 신난 동작으로 다림질, 빗질, 요리를 한다. 그러나 벽지와 똑 같은 무늬의 옷 때문에 관객에게 보이는 건 빗자루와 다리미, 그리고 섬뜩하게 까만 얼굴과 손뿐이다. 당시 백인 가정의 눈에도 청소 도구와 그걸 든 이가 흑인이라는 사실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을 것이다.
조혜정&김숙현 작가는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2014)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노동을 가시화하는 시도를 했다. 영상 안에서 콜센터 직원, 비행기 승무원 등 각 직업에 해당하는 의상을 입은 무용수는 2분 30초 간 특정 동작을 유지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바들바들 떨리는 사지를 통해 수치심, 무력감, 분노, 공포를 표현하고자 했다.
전시의 주제는 최근 국내외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성차별과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코리아나 미술관 측은 “여성의 가사일과 돌봄 노동은 ‘생산적인’ 일을 해내는 남자들을 ‘돕는’ 부차적인 일로 간주돼 사회적 시야에 잡히지 않게 됐다”며 “현대 미술의 시각으로 여성의 노동이 사회구조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6월 16일까지 열린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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