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명품 행정]<3> 대구시 ‘경증치매노인 기억학교’
#6년째 운영… 13곳으로 확대
대구 치매노인 500여명 혜택
5일 오전 10시30분 대구 북구 노원동 1가 ‘행복누리 기억학교’. “결린 어깨가 싹 풀리도록 팔을 뻗으세요”라는 말에 60대부터 90대 어르신 30여명이 ‘백세체조’를 시작했다. 음정과 박자는 제각각이지만 ‘산토끼’ 장단에 맞춰 노래와 박수, 온몸 스트레칭을 했다. 30분 체조 후 곧바로 회상수업이 진행됐다. “여러분의 생년월일은 언제 인가요. 띠는 무엇 인가요. 적어봅시다”는 교사의 말에 어르신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펜을 움직였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모습은 학창시절이 따로 없었다. 서로 정답도 비교하고, 모르는 내용은 알려주던 백발의 학생들은 “학교가 너무 즐겁다”고 입을 모았다. 이 기억학교의 안길무(80) 할머니는 “집에서는 할 일도 없고 우울한 기분만 드는데 학교에 오면 마음이 밝아지고 건강해지는 기분”이라며 “기억학교에서 한글을 배워 이름을 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구시가 6년째 전국에서 유일하게 운영 중인 ‘경증치매노인 기억학교’가 어르신들의 기억력 감퇴완화에 도움을 주면서 생활의 활력소로 자리잡고 있다. 정부가 올해부터 치매국가책임제를 본격 시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절반 이상의 어르신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기억학교의 역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지역 치매노인은 3만2,057명으로 이중 정부지원을 받는 장기요양등급 대상자는 1만1,30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만754명은 치매와 일반인의 경계선에서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는 이에 따라 2013년 3월 ‘치매 없는 대구만들기’ 사업을 시작해 진명, 효성, 마야, 상록수기억학교 등 4개 치매노인종합지원시설을 연 후 현재 13개 기억학교를 운영 중이다. 이 기억학교에는 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60세 이상 경증치매 어르신 520명이 다니고 있고, 이달 중 서구에 보림기억학교가 문을 열면 560명이 혜택을 보게 된다.
#복지사ㆍ간호사 등 도움으로
기억력 감퇴 완화 수업 받아
치매 개선에 행복지수도 ‘쑥’
기억학교마다 40명 안팎의 경증치매 어르신들이 오전 9시∼오후 6시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전문가 9명의 도움을 받아 기억력 감퇴 저하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다. 정사각형을 일곱 조각으로 나눠 도형을 만드는 칠교놀이와 한자, 회상교실, 일기쓰기를 통한 기억여행 등 다양한 내용을 놀이 형식으로 소화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또 체조와 그림, 음악, 수화, 한글, 원예 등 다양한 인지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삶의 활력소를 찾고 있다. 봄 가을에는 소풍도 간다.
지난해 M기억학교를 다닌 이모(89) 할머니는 같은해 말 한 신경외과병원의 치매종합검사에서 ‘인지기능이 향상됐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고, S기억학교 우모(85) 할아버지는 당초 외출 자체를 불안해 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2년6개월이나 학교를 다니고 있다. 또 “물건을 누가 훔쳐갔다”며 망상 증상을 심하게 보이던 박모(70) 할머니는 치매 장기요양등급을 받도록 주선해 한 양로원에 입소하기도 했다.
김기덕(38) 행복누리 기억학교 소장은 “치매는 우울증과 같이 오는 경향이 있어 같이 생활하는 가족까지 괴롭고 힘든 경우가 많다”며 “기억학교를 다니면 치매 개선에다 행복지수도 높아지기 때문에 가정과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자부했다.
한편 기억학교 어르신 중 40%선인 저소득층은 전액 무료, 60% 정도인 일반층은 하루 1만~2만원만 내면 등〮하교 서비스는 물론 점심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다. 당초 기억학교 예산은 대구시와 8개 구군이 지원했으나 올해부터 복권기금에서 40여억원의 운영비를 모두 내고 있다.
이선희 대구시 어르신복지과장은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는 어르신들이 더 많이 기억학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서 치매 없는 대구를 만드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