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간결하게 정리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공간을 근사하게 만드는 일은 정리정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그리고 아마도 유행처럼 번지던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인해-최대한 적게 소유하고 공간과 마음에 여백을 두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물건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그 시절, 심판의 잣대에 오른 수많은 물건 중에는 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리를 차지하는 책장을 따로 두지 않기로 마음먹고는 책상 아래에 꼭 소장하고 싶은 책만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책들은 책상 아래 작은 공간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는데 겹겹이 쌓여 있는 터라 한 권씩 빼기도 힘이 들었고, 아무리 청소를 해도 돌아서면 먼지가 쌓이곤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을 살다가 지난해 5월,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문득 ‘서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키가 큰 책장에 여유롭게 꽂혀 있는 책들, 가운데 몇몇 칸에는 책이 가로 세로로 디스플레이한 것처럼 배치되어 있고 그 위나 옆으로 소품이나 토분에 심은 작은 식물을 함께 놓은,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그런 서재가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참고용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잘 세팅된 외국의 서재 풍경이었습니다. 과연 그런 공간을 나도 가질 수 있을까, 조금은 의심을 하며 이사 온 집의 방 세 개 중 가장 크고 밝은 방을 서재로 정했습니다. 벽면을 꽉 채울 만큼 큰 책장을 짜 넣기로 하고는 맨 아래 칸에는 문이 달려서 문서나 자질구레한 것들을 수납할 수 있고, 위쪽은 4단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디자인의 책장을 주문제작 했습니다. 소박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모습이기를 원했습니다.
그 책장에는 책의 크기와 종류, 분야에 상관없이 ‘색깔별’로 책을 꽂고 (이렇게 하면 놀랍게도 책장이 예뻐집니다!) 한가운데 가장 잘 보이는 섹션에는 제 나름대로 선정한 ‘이달의 책’을 표지가 잘 보이도록 배치해두었습니다. 동묘시장을 구경하다가 커버가 멋져서 구입한 LP판과 중고 책들을 좋아하는 소품과 함께 디스플레이한 다음, 동그란 잎사귀가 귀여운 식물도 놓았습니다. 책장 앞에는 편히 기대어 앉을 수 있는 등나무 소재의 곡선이 예쁜 의자를 두고 한쪽 벽에는 오래된 지류함을 두고 서랍장 대신 사용합니다. 반대편 벽에는 긴 책상을 배치해 작업 공간도 넉넉하게 마련했습니다. 창가에는 토분에 심은 몬스테라, 무화과, 아보카도를 키웁니다.
오래된 집의 창문이 커다란 방, 사계절과 매일의 날씨가 또렷하게 느껴지는 우리 집 서재에서 아침이면 창문을 열고 바람을 느끼며 책을 읽습니다. 식물들의 잎사귀가 살랑거립니다. 왜 진작 이런 서재를 만들지 않았을까, 책장 앞 의자에 앉아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 아침에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공간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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