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딩 챔프 가르시아, 오거스타 15번홀 연못서 +8타 진기록
마스터스 1R 85위로 컷탈락 위기
“왜 멈추지 않았나 모르겠다” 탄식
1995년 영화 ‘틴 컵’ 실제 보는 듯
론 쉘톤 감독의 1995년 영화 ‘틴 컵’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한 주인공 로이 맥어보이는 아마추어 골퍼다. 그는 세계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US오픈에서 절호의 우승 기회를 잡지만 막판에 똑 같은 곳에서 공을 자꾸 워터 해저드에 빠뜨리는 바람에 12타를 기록하면서 우승을 놓친다. 이 ‘웃픈’ 신(scene)은 지금도 골프를 소재로 한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도 세계 최고 권위의 골프대회 마스터스에서, 디펜딩 챔피언에 의해서다. 지난해 생애 첫 마스터스 챔피언에 오른 세르히오 가르시아(38ㆍ스페인)는 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악몽 같은 하루를 보냈다.
이날 가르시아는 파5 530야드짜리 15번 홀을 13타 만에 탈출했다. 15번 홀은 그린 앞뒤로 연못이 있는 홀이다. 드라이버 티샷으로 322야드를 보낸 가르시아는 206야드를 남겨두고 6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 샷을 연못에 빠뜨렸다. 1벌타를 받고 공을 드롭한 그는 웨지를 잡고 4번째 샷을 했는데 그린에 안착한 듯한 공은 뒤로 데굴데굴 구르더니 또 다시 연못으로 흘러 들어갔다.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공은 그린에 서지 못하고 마치 연못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미끄러져 내려갔다. 가르시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5번 연속 물에 빠뜨린 뒤 6번째 샷 만에 겨우 공을 그린 위에 올릴 수 있었다. 이후 1퍼트 만에 공을 홀에 넣었지만 그새 타수는 13타가 돼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옥튜플 보기(줄여서 ‘옥트’라 부르기도 한다)’다. 기준 타수(파5)에 8타 초과했다는 뜻이다. 13타는 마스터스 역사상 최다 타수 신기록이다. 이미 2오버파를 떠안고 있던 가르시아의 스코어는 10오버파로 급격히 불어났다. 그는 다음 홀에서 버디를 잡아 9오버파로 1라운드를 마쳤다. 순위는 87명 출전자 가운데 공동 85위다.
가르시아의 이날 장면은 영화 ‘틴 컵’과 판박이다. 사실 이 장면은 골프 해설가인 개리 맥코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선수 시절 맥코드는 1986년 페덱스 세인트쥬드 클래식에서 4번 아이언을 잡고 세컨샷을 쳤지만 물에 빠뜨렸고 4번을 더 반복한 뒤 16타만에 공을 홀 컵에 집어넣었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에 따르면 당시 맥코드는 경기 후 “손목에 자해를 해서 인터뷰를 못 하겠다”고 기자들에게 말 할 정도로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멀쩡한 모습으로 기자들 앞에 나타났고 “잘못된 클럽 선택이었다”고 토로했다.
가르시아 역시 어안이 벙벙한 건 마찬가지였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그는 이날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정신적 충격을 호소했다. 이어 “나는 좋은 샷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불행히도 공이 멈추지 않았다. 왜 멈추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울상을 지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연장 플레이오프 끝에 생애 첫 메이저 왕관을 품에 안은 그에게 마스터스는 ‘꿈의 무대’였다. 지난달 태어난 첫 딸 이름을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13번 홀의 별명인 ‘어제일리어(진달래)’로 지었을 정도다. 그러나 올해 대회에서 그는 2연패는커녕 컷 탈락을 걱정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전년도 챔피언인 당해 챔피언에게 ‘그린 재킷’을 입혀주는 전통에 따라, 가르시아는 컷 탈락을 당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남아 나머지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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