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김용규 지음
IVP발행ㆍ932쪽ㆍ4만2,000원
2010년 출간된 명작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의 개정증보판이다. 기꺼이 명작이라 부름은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 신앙이냐 이성이냐 같은, 종교를 둘러싼 저차원적 이분법을 뛰어넘은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는 길은 두 가지라 본다. “하나는 신앙을 통해서고, 다른 하나는 이성을 통해서다. 전자는 은혜롭지만 자폐적이기 쉽고, 후자는 설득적이지만 자주 은혜롭지 못하다. 종교적으로는 전자가 우선시되고, 학문적으로는 후자가 중시된다.” 이 책의 포인트는 이 두 가지 길이 그래서 대립한다는 게 아니다. 결국 ‘신’에 다다른 뒤 되돌아보면, 두 가지 길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신앙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며,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라는 중세 신학자 안셀무스의 말을 인용해뒀다. 오늘날 한국 땅에서 예수 이름으로 사익을 취하는 자들에게 쏟아지는 비판의 핵심은 그저 자기네들끼리 박수 치며 좋아 죽는 ‘자폐적 은혜’다. 1,000쪽 가까이 되는 이 책은 자폐적 은혜에서 벗어나기 위한 친절한 가이드북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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