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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년 왕가위 감독… 매혹적인 영화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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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년 왕가위 감독… 매혹적인 영화 뒷이야기

입력
2018.04.05 17:1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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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감독 왕자웨이(왕가위)의 영화는 시적이다. 줄거리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분위기로 정서를 뒤흔든다. 씨네21북스 제공
홍콩 감독 왕자웨이(왕가위)의 영화는 시적이다. 줄거리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분위기로 정서를 뒤흔든다. 씨네21북스 제공

‘왕가위: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왕자웨이ㆍ존 파워스 지음ㆍ성문영 옮김

씨네21북스 발행ㆍ304쪽ㆍ4만8,000원

“우리 작품 하나 해야죠?” 1997~98년쯤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 홍콩 유명 배우 장만위(장만옥)의 제안에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은 품고 있던 영화 소재 하나를 꺼냈다. “음식은 어떨까?” 왕자웨이는 프랑스 요리 거장 장 앙텔므 브리야 사라랭이 쓴 ‘미식예찬’에 빠져 있었다. 구상했던 영화의 키워드는 ‘음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홍콩 센트럴 지구에 있는 심야 편의점을 배경으로 주인과 그 곳을 이용하는 이의 에피소드와 반려자가 외도 중인 두 이웃의 얘기 등을 엮어 볼 심산이었다.

현실은 욕망을 배신하기 일쑤. 촉박한 제작 일정에 감독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아비정전’의 후속편을 머릿속에 그렸다. 왕자웨이 감독의 대표작 ‘화양연화’가 탄생하기까지 과정이다.

비밀 하나. ‘화양연화’는 초모완(량차오웨이ㆍ양조위)과 수리첸(장만위)이 싱가포르에서 재회한 뒤 수리첸이 초모완에 배신 당하는 이야기로 기획됐다. 영화 촬영 지연과 예산 초과 문제로 결말이 바뀌어 세상에 나왔다. 초모완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찾아 벽에 생긴 구멍에 못다한 사랑을 속삭이던, 그 아련하고 애틋한 명장면을 놓칠 뻔 했다니. 영화의 미완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열혈남아’와 ‘아비정전’ ‘중경삼림’ ‘화양연화’ ‘해피 투게더’ ‘동사서독’ ‘일대종사’… 책엔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탄생 배경과 제작 뒷얘기 등이 생생하게 실렸다. 미국 영화 평론가가 감독의 인터뷰를 토대로 살을 붙인 덕이다.

책 '왕가위: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에 실린 영화 '화양연화' 촬영 사진. '아비정전'과 마찬가지로 '화양연화'엔 량차오웨이(양조위)와 장만위(장만옥)가 나오고, 두 영화엔 장만위의 극중 배역 이름이 같다.
책 '왕가위: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에 실린 영화 '화양연화' 촬영 사진. '아비정전'과 마찬가지로 '화양연화'엔 량차오웨이(양조위)와 장만위(장만옥)가 나오고, 두 영화엔 장만위의 극중 배역 이름이 같다.

왕자웨이는 1980~90년대 홍콩 영화 뉴웨이브의 선봉에 서 1998년 ‘해피 투게더’로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력을 넘어 그의 영화는 장르였다. 그의 필름엔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했고, 혼돈이 가득했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우수가 가득한 화면들. 매혹은 왕자웨이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어였다.

식민지의 폐허와 번영 그리고 동ㆍ서양의 공존. 홍콩의 불투명한 미래는 중국 상하이 출신 홍콩 이민자 감독의 창작혼을 잠식했다. ‘2046’이 대표적이다.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의 자치권은 2047년에 소멸한다. 자치가 끝나기 직전 해(2046)의 불안은 ‘해피 투게더’ 등 그의 영화에 전반적으로 흐른다.

저자는 감독의 성장 배경과 철학을 소개하며 영화를 촘촘히 읽는다. 황금콤비라 불렸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과 미술감독 장슈핑(장숙평) 그리고 배우 장궈룽(1956~2003ㆍ장국영) 등 ‘왕자웨이 사단’의 등장은 반갑다.

배우 장궈룽(1956~2003ㆍ장국영)과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이 영화 '아비정전' 촬영 중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장궈룽은 왕자웨이에게 "장궈룽이 아닌 전설로 불러달라"고 했단다. 장궈룽은 그렇게 전설이 됐다.
배우 장궈룽(1956~2003ㆍ장국영)과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이 영화 '아비정전' 촬영 중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장궈룽은 왕자웨이에게 "장궈룽이 아닌 전설로 불러달라"고 했단다. 장궈룽은 그렇게 전설이 됐다.

왕자웨이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기로 유명하다. 왜일까. “제겐 암실 같은 거죠. 급박한 상황에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주니까요.” 250여 장에 달하는 미공개 영화 촬영 사진은 ‘미끼’를 물 수밖에 없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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