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연장 근로 46주 달하던
웹디자이너 동생 장민순씨 위해
언니 향미씨, 근로감독 진정 접수
고용부 “내년에” 미뤄… 동생 자살

“언니, 나 그냥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 지난 1월 2일 새벽, 웹디자이너 고 장민순(36)씨가 언니 향미(39)씨에게 보낸 메일은 그의 유서가 됐다. 여느 날처럼 10시간이 넘게 일하고 지친 몸으로 늦은 귀가를 한 민순씨는 다음날 영원한 잠에 빠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 장씨의 마지막 메일 속엔 그의 출퇴근 교통카드 기록 파일이 들어 있었다.
향미씨는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섰다. 동생 민순씨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끔찍한 근무실태를 대신 고발하고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향미씨는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민순씨는 2015년 5월부터 약 2년8개월간 온라인 교육기업 S사에서 웹디자인을 해 왔다. 출퇴근 교통카드 기록과 근무일지 등을 보면, 재직기간에 장씨가 12시간 이상 연장 근로한 건 46주로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고 한다.

근무실태 바로잡으려 나섰지만
사측은 “고인 우울증 앓아” 회피
민순는 특히 사망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 집중적인 야근에 시달렸다. 건강악화로 1개월간 휴직하고 돌아온 지 불과 한 달이 안 됐을 시점이었다. 회사가 정한 근로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였지만 장씨가 11월 한 달간 오후 8시를 넘겨 퇴근한 날은 절반에 가까운 14일, 이 중 자정을 넘어 퇴근한 날도 4일이었다. 장씨 혼자 온라인 강좌 상세페이지 개편 및 브랜드 디자인, 카드뉴스 제작 등 4명분의 업무를 도맡아 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지난해 12월 1일 민순씨가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고 대성통곡을 하자 향미씨는 깜짝 놀라 바로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 진정을 접수했다. 그러나 약 1주일 뒤 관할인 고용부 서울강남지청은 “올해 근로감독 일정이 끝나 내년 2월 이후 다른 업체들과 함께 묶어서 감독을 나가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정병욱 민주노총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회사는 장씨와 근로계약을 맺을 당시부터 포괄임금제를 악용해 매주 16시간의 연장근로가 발생하도록 정해 명백히 법을 어기고 있었다”며 “고용부가 제때 근로감독만 했어도 안타까운 죽음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S사 측은 “외부 법무법인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다른 직원에 비해 업무가 과중했다는 점을 확인하기 어려우며 고인의 스트레스는 기존에 앓고 있던 우울증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과로사OUT대책위는 회사가 강요하는 과도한 업무로 민순씨는 물론 그의 직장 동료들까지도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향미씨는 “나도 대형 게임회사에 근무하고 있지만 몇 년 전 과로사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현재 사내 야근은 없어진 상태”라며 “회사는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사내 관행을 개선하고 고용부 역시 IT업계 구조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동생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고용부 서울강남지청 관계자는 “근로감독 착수 여부를 이른 시일 내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신혜정 기자 arê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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