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부 시행령 개정 먼저…”
국토부 “법사위가 오케이 하면…”
6개월 넘게 제자리 걸음만
원가공개 항목 61개로 확대 땐
아파트 분양가 40%까지 떨어져
“정부ㆍ국회 협의부터 시작해야”
아파트 분양가를 40%까지 낮출 수 있는 방안으로 추진 중인 분양원가 공개 확대가 국회와 정부의 네탓 공방으로 헛바퀴만 돌고 있다. 여야 이견으로 관련 법안 통과가 난항을 겪자 국회는 정부에 시행령 개정부터 요구하고 정부는 부담을 떠넘긴다며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4일 국토교통부와 국회 국회교통위원회 등에 따르면 공공택지에 지어진 주택에 대한 분양원가 공개 항목을 현행 12개에서 61개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2007년 도입됐다가 2012년 법안 개정으로 공개 항목이 현재 수준으로 줄어든 분양원가 공개제도의 본래 취지를 5년 만에 되살리자는 취지다. 개정안은 택지ㆍ공사ㆍ간접비 등에 한정된 원가 항목을 ▦택지비 4개 ▦토목 13개 ▦건축 23개 ▦기계설비 9개 등 총 61개로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건설사의 공사비 부풀리기 방지 차원에서 흙막이ㆍ창호ㆍ도배ㆍ타일 공사비 등의 세부항목도 공개 내역에 포함됐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여야 의원 41명이 이름을 올린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9월 국토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자구 심사 등을 담당하는 법사위 2소위 위원장인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반대로 법사위 전체회의는 물론이고 본회의 상정까지 막힌 상황이 반년 넘게 이어되고 있다.
교착 상태가 길어지자 정 의원 등 야당 국토위원들은 국토부가 하위 법령인 시행령을 먼저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현미 장관을 비롯해 국토부 역시 분양원가 공개에 찬성하고 있는데다가 현행법상 시행령 수정을 통해서도 분양원가 공개 항목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토위 관계자는 “한국당의 국회 보이콧 전략 때문에 개정안의 연내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국토부가 먼저 시행령을 통해 항목을 61개로 수정, 여론을 환기해야 개정안 통과의 정치적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국회 요구에 선뜻 응하지 않고 있다. 여야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시행령부터 고치고 나섰다가 국회 분란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개정안 대표 발의자인)정 의원 등이 워낙 분양원가 법제화에 대한 의지가 강해 괜히 정부가 끼어들었다가 갈등만 더 증폭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원 출신인 김 장관이 나선다고 해도 같은 당 출신도 아닌 김 의원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기가 껄끄럽고 결과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렇다 보니 국회와 정부도 마찰을 빚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토위 관계자는 “국토부는 여태껏 법사위 핑계만 대면서 눈치보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부 관행혁신위원회까지 권고한 사항인데 우리 부가 분양원가 공개 확대에 소극적일 이유는 없다”며 “국토위에서 시행령 선(先)개정에 대해 ‘오케이’만 해주면 즉시 개정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시장에서는 분양원가 공개가 확대되면 적어도 공공택지에 건축되는 주택만큼은 합리적인 분양가로 공급될 수 있는 만큼 정부와 국회 모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별 편차는 있겠지만 분양원가가 공개되면 분양가가 30~40%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관측이다.
실제로 경제정의실천연합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7개 항목 원가만 공개한 경기 성남시 판교지구(2006년)는 평당 분양가가 1,204만원이었지만 61개를 공개한 서울 송파구 장지지구(2007년)의 분양가는 판교의 64.7% 수준인 779만원에 불과했다. 또 SH공사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단지를 건설했음에도, 12개 원가만 공개한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2013년ㆍ평당 1,372만원)와 61개를 모두 공개한 발산지구(2007년ㆍ578만원)의 분양가 차이는 2.4배에 달했다. 김성달 경실련 팀장은 “법 통과가 어렵다면 국토부가 시행령 개정을 먼저 한 뒤 여야가 함께 한국당을 설득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정부와 국회가 서로를 탓할 것이 아니라 협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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