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생존 자체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뿌리 위에 얹힌 철재 덮개와 그 위를 밟고 지나는 보행자들의 무게가 가끔 버거웠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나를 보호해 줄 거라 믿었던 그 덮개가 몸통을 조여 오기 전까지는... 단단한 강철 덮개는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이 파고들었고 물과 양분을 공급하는 통로가 점점 막혀 가고 있다.” 보호덮개로 인해 고사 위기에 처한 가로수의 심정을 상상해 보았다.
보행자의 답압(踏壓ㆍ보행 압력)과 토양 유실로부터 가로수를 보호할 목적으로 설치한 보호덮개 중 상당수가 관리 부실 등으로 인해 오히려 가로수 생육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일보 ‘View&(뷰엔)’팀이 2일 서울 중구 정동길의 가로수 보호덮개 251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지면과의 간격을 확보하지 않는 등 잘못 설치된 경우가 절반 이상이었다. 또한, 파손된 채 방치되거나 기둥을 압박하는 등 관리가 부실한 덮개도 전체의 약 30%인 74개에 달했다.
사례별로 분류하면, 보호덮개가 기둥을 파고들거나 지면 위로 드러난 뿌리를 짓누르고 있는 경우가 37건으로 가장 많았고, 덮개가 파손되거나 아예 사라진 경우도 13건에 달했다. 뿌리의 융기에 의해 돌출돼 보행을 방해하거나 오토바이 또는 광고물 등이 무단 적치된 덮개도 각각 12개로 조사됐다. 가로수의 생명을 옥죄는 보호덮개는 중구 세종대로와 남대문로, 종로구 종로 3가 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정동길 보호덮개 251개 중
절반 이상이 잘못 설치돼
지면과 붙어 보행자 압력 그대로
성장 못 따라가 기둥 조이기도
부실한 보호덮개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가로수의 몫이다. 곽정인 환경생태연구센터장에 따르면 철재 덮개가 기둥을 파고들 경우 물관과 체관 등 기둥 바깥 부분에 위치한 유관속계가 절단되면서 말라죽을 수 있다. 때문에 덮개의 내경(內徑) 크기를 조절해 주는 등 가로수의 성장에 맞춘 관리가 필요하다.
지면 위에 그대로 얹힌 보호덮개 역시 가로수의 생육에 나쁜 영향을 주기는 마찬가지. 보행자나 적치물의 무게에 철재 덮개의 무게까지 더해지면서 토양이 다져져 통기성을 떨어뜨리고 잔뿌리 발달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서울시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자체가 채택하고 있는 산림청 고시에 따르면 가로수 보호덮개는 특별한 피해가 예상되지 않는 한 지면과 5㎝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보호덮개에 맞춰 지면 위로 돌출된 뿌리를 잘라야 하는 경우에도 절단면에 대한 세균 방지 처리 등 사후 조치가 필수다.
가로수의 성장에 따라 내경을 조절하거나 다양한 소재로 제작된 보호덮개가 시중에서 다수 유통되고 있지만 예산 부족 등의 문제로 도입은 더디다. 보호덮개에 대한 정비는 가로수 관리의 우선순위에서도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송동명 서울시 조경관리팀장은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뿌리가 썩거나 속이 빈 가로수처럼 시민의 안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경우부터 우선적으로 조치하다 보니 보호덮개 정비가 미뤄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동길 관리 주체인 중구청 관계자는 “과거 가로수를 일괄 정비할 때 도입한 규격화된 덮개를 한 번에 교체하기엔 예산이 부족하다”면서 “기둥을 파고드는 등 문제가 심각한 보호덮개부터 내경 조절이 가능한 제품으로 교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크기 조절 자유로운 시중 제품
예산 부족 탓 설치 미흡
많이 심기 보다 아끼고 가꾸는 마음 절실
곽 센터장은 “척박한 도심에서 사는 가로수에게 충분히 넓은 면적과 적절한 생육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도심 환경을 지키는 길”이라며 “크기나 식생 등 가로수마다 생태적 특성이 제각각이고 가로 환경 또한 다양하므로 그에 맞는 방식과 형태의 보호덮개를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로수는 도심 환경 개선에 없어선 안될 존재이면서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많이 심기 보다는 아끼고 가꾸는 마음이 절실한 식목일이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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