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개발 방관 못 해”
원전 800억弗 투자 맞물려
빈살만 왕세자 발언 주목
트럼프, 원전 수주 명목으로
우라늄 농축 등 기술 이전 의사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라이벌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핵무장 야망을 키우고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사우디에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쓰일 수 있는 우라늄 농축기술을 이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자칫 중동지역에 ‘핵 도미노’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 언론들은 지난달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 CBS방송과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어떤 핵무기도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의혹이 들 경우, 우리도 전력을 다해 따라잡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탈석유 경제개혁 ‘비전 2030’의 일환으로 향후 25년간 원자로 건설에 800억달러를 투자하려는 사우디의 원전 건설프로젝트와 맞물려 있다. 석유부국인 사우디는 공식적으로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고, 석유고갈에 대한 대안마련 차원에서 원전건설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다수 전문가는 이 프로젝트가 단순히 평화적 목적만은 아니라고 의심한다. 2015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독일을 포함시킨 이른바 ‘P6’와 체결한 핵 합의로 경제제재가 풀리면서 역내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자 사우디가 핵의 군사적 이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해석이다. 사우디의 차기 권력인 빈살만 왕세자는 “이란 최고지도자는 히틀러마저 좋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할 정도”라며 이란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대릴 킴벌 미 무기통제협회(ACA) 사무국장은 워싱턴포스트에 “사우디는 원자로의 안정적 연료공급을 위해 우라늄 농축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이 기술을 가지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면서 “세계적으로 핵연료 공급은 충분하고 러시아 등에서 구매하기도 쉽다는 점에서 경제적으로 득이 될 게 없는 주장”이라고 사우디의 의도를 의심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 원전 공사를 따내 고사 중인 미국 내 원전산업을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우라늄 농축기술과 사용후 핵연료재처리 기술의 이전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미국이 사우디에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원자력협정(123협정)을 체결해야 하는데, 이 협정은 미국의 원자력 기술을 제공받는 나라가 우라늄농축과 사용후 연료를 재처리하려면 미 의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미 의회는 핵 도미노를 우려, 미국이 사우디와 이 협정을 맺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최근 부쩍 사우디와 밀착하고 있는 이스라엘 역시 사우디가 이 기술을 보유하는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유별난 ‘사우디 챙기기’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 기술을 제공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미 인터넷 매체 복스는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지가 사우디였다는 점, 사우디가 카타르와 단교를 하는 등 강경책을 펼 때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 지지한 점, 예맨 내전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과 싸우고 있는 사우디 주축 아랍동맹군의 무차별적 군사공격을 용인하고 있는 점을 이런 예상의 근거로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에도 살만 사우디 국왕과 통화, 예맨 내전 종식에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진력하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의 핵무장 허용이라는 도박을 시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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