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관리실ㆍ경비초소에 비치
골든타임내 갖다 쓰기 어렵고
그나마 밤엔 문 잠긴 경우 많아
수년전 경기 양주시 집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긴 이모(55)씨는 400만원을 들여 심장충격기인 자동제세동기(AED)를 샀다. 당시 그가 살던 아파트 관리동에 제세동기가 설치돼있긴 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해서다. 자신의 집과 100여m 떨어져 있어 응급조치를 위한 골든타임(4~5분)에 가져다 쓰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씨는 “아파트 공용 제세동기는 나에겐 있으나마나 한 장비”라고 말했다.
생명이 위급한 심정지(심장 멈춤)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공동주택 등에 의무 설치된 심폐소생 응급장비인 자동제세동기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저녁 8시 이후 대부분 문이 잠기는 관리동ㆍ경비실 안이나 신속하게 가져다 쓰기 힘든 곳에 비치된 경우가 많아서다.
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5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은 공공보건의료기관, 공공기관, 철도역사 등과 함께 제세동기 의무설치 대상이다. 제세동기는 심장이 멈춘 응급 환자에게 적절한 전기 충격을 줘 심장 박동을 되살리는 심폐소생술의 핵심 장비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설치된 3만2,616대 중 절반 이상이 공동주택에 비치돼 있다.
심정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중요 장비지만, 이용자가 신속하게 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제세동기는 아파트 공동 경비로 구입하는데, 대당 200만원을 넘는 고가 장비다 보니 관리 편의성 등의 이유로 관리동이나 경비초소에 비치해 놓는 일이 많다. 밤 시간대엔 혼자 근무하는 야간당직자가 문을 잠그고 외부 일을 보는 일이 많아 아예 이 시간엔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실제 응급의료정보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입주가 활발한 경기 남양주시 아파트 100여 곳의 제세동기 위치정보를 확인한 결과 안내가 없거나 관리동 내에 설치된 경우가 절반 이상이었다. 위급상황이 닥쳐도 이용자가 신속하게 꺼내 쓰기란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항상 개방된 곳이어도 너무 멀어 골든타임에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가정에서 심정지 사고의 50% 이상이 발생하는 점을 고려할 때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500세대 미만 아파트는 아예 설치대상에서 빠진 것도 문제다.
주강철(1급응급구조사) 소방장은 “설치 장소를 현실에 맞게 안내하거나 시간단축을 위해 관리사무소 직원이 제세동기를 가져다 주는 것도 대안”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부 설치 장소가 현실과 맞지 않아 개선책 마련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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