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9일,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 본부 이전이 시작됐다. 나토는 1960년대 급조된 조립식 건물이 좁고 낡아 11억 7,000만 유로(약 1조 5,000억 원)를 들여 유리 외벽의 초현대식 철골 건물을 신축했다. 냉전이 끝나고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91년 해체된 이래 나토의 위상과 역할 재편도 꾸준히 이뤄져 왔다. 회원국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전쟁 위협이 크지 않은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입장에서는 나토의 각별함이 예전만 못하다. 그런 사정이 예산으로 드러나, 미국이 나토 예산의 70% 이상(냉전기엔 약 50%)을 감당하고 있다. 2017년 기준 나토 회원국 중 국방비로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집행한 국가는 단 세 나라(영국, 그리스, 에스토니아) 뿐이다. 현재 회원국은 29개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환기하는 것도 나토 조약 5조(집단안보원칙)에 근거한 회원국들의 약속, 즉 오는 2024년까지 국방비를 GDP 2% 수준으로 증액하라는 것이다.
나토 창설의 근거가 된 북대서양조약이 미국 캐나다와 영국 프랑스 등 유럽 10개국 합의로 1949년 4월 4일 체결됐다. 처음엔 전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느슨한 정치연합체 성격이었으나 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군사적 집단방어체제를 갖추기 시작, 51년 4월 방위계획위원회 산하 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통합군사조직인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를 창설했다. 러시아를 맹주로 한 동유럽 군사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Warsaw Pact)가 출범한 것은 1955년 5월이다.
하지만 나토의 군사 개입은 드물었다. 그나마도 주로 냉전기 이후인 92년의 보스니아 내전, 99년의 코소보 내전, 9ㆍ11 직후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2011년 리비아 내전 등이었다. 회원국 이탈도 없지 않아 프랑스가 독자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66년부터 30년간 나토 바깥에 있었고, 그리스도 나토가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을 방관하자 74년 탈퇴(80년 재가입)한 적이 있다. 바르샤바조약기구 붕괴 후, 우크라이나 등 일부를 제외한 체코 폴란드 등이 잇달아 NATO에 합류했다.
새 건물은 세웠지만 나토의 위상은 러시아, 즉 최근 4선에 성공한 대통령 푸틴의 ‘활약’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그가 실질적 위협으로 건재해야 나토도 산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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