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발생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ㆍ카이스트)의 불산 누출 사고 대처가 매우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초기 대응부터 후속조치까지 ‘국가 최고 연구기관’이라는 명성이 무색했다는 지적이다. 불산은 강력한 독성을 가진 화학물질이다. 2012년 경북 구미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해 5명이 사망했다. 카이스트 사고에서는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대응 미숙에 대한 문제가 지적된다.
사고는 지난달 30일 오후 2시 40분쯤 대전 카이스트 정보전자공학동 4층 여자화장실에서 발생했다. 환경미화원 A씨는 화장실 캐비닛에서 ‘불산’이라고 적힌 플라스틱 통을 발견했다. A씨는 통에 담긴 액체를 쓰다 남은 락스로 알고 다른 락스 통에 부었다. 순간 부글부글 끓는 화학반응이 진행됐다. 소동이 일자 옆 실험실에 있던 대학원생 B씨가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와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A씨를 교내 병원으로 옮겼다. 교내 병원에서는 A씨를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고, 119 응급구조대가 출동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뒤늦게 사고가 난 것을 알게 된 학교 안전팀 직원은 사고 발생 20분쯤 뒤 현장에 출동했다. 학교 측에 따르면 안전팀 직원은 “냄새가 나지 않고, 환기를 시켰다”고 학교 측에 보고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가스 검출기로 불산 가스가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검사는 다음날 아침에서야 진행됐다. 학생들이 반발했기 때문에 진행된 검사였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대학원생 B씨는 ‘겉으로 봐서 이상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이송도 하지 않았다. 유독물질 유출 시 ▦건물 내 인원 대피 ▦출입 통제 ▦소방서 신고 ▦안전점검 등 긴박하게 진행돼야 할 초동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후속 조치 역시 미흡했다. 학교는 사고가 난 지 6시간이나 지난 오후 8시 55분 사고 건물을 사용하는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83명과 연구실장 14명에게 ‘후속 조치는 완료됐으나 조기 퇴실을 권장 드린다. 랩장(연구실장)께서는 연구실 학생들에게 안내 바란다’는 휴대폰 문자를 발송했다. 전기및전자공학부 학생과 이 건물을 드나들 수 있는 주변 학과에는 전파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학교 측은 후속 조치가 완료됐다고 했지만 ‘사고 당시 그 건물에서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불산 가스 노출 때 나타날 수 있는 감기 증세가 있다’며 불안해하는 학생들이 나타났다. 학교는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이 지난 3일이 돼서야 희망자를 대상으로 검진을 시작했다.
한영훈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이날 “사건 발생 직후 대피 안내부터 건물 폐쇄 후 불산 검출 여부 확인, 가스에 노출된 인원 검진 등이 신속하게 이뤄졌어야 했다”면서 학교 측의 대응 미숙을 지적했다. 그는 “사고 다음날 학교 측은 검진 등 후속조치를 먼저 하자고 해놓고 진상조사도 하지 않은 채 안전하다는 보도자료부터 배포했다”고 비판했다. 총학생회는 위험 물질이 화장실에 방치돼 있었던 이유와 학교 측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등 진상 파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카이스트 관계자는 “30일 발생한 일은 실험실 사고가 아닌 폐기물 관리 부주의”라면서 “안전팀 직원이 현장에 나갔을 때 냄새가 나지 않고 위험 요인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상황을 종료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초동 및 후속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결과만 놓고 보면 시간대별 대응에서 미흡했던 점이 있다”면서 “학생들이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으니 위원회를 통해 미숙한 점을 찾아 개선하겠다”고 답했다. 환경미화원 A씨는 검사결과 이상이 없어 이날 중 퇴원할 예정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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