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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제 머리 못 깎은 노동변호사

입력
2018.04.03 15: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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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남편은 17년 회사원 생활을 끝내고 주부로 전업했다. 시작은 적폐청산이었다. 적폐청산의 나비효과가 남편의 회사에까지 닥쳤고, 중간을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남편의 회사는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회사에 가기 싫다는 말은 남편의 입버릇이었지만, 그 말은 언제나 “그래도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 때까지는 다녀야죠”로 끝나곤 했다. 나는 남편에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답하곤 했지만, 정말로 나만 일하는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우리는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 때’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기업이니 아마 사오 년 정도겠지만, 그때까지는 설마 괜찮겠지.

‘설마’가 ‘어?’로 바뀌는 데에는 몇 달 걸리지 않았다. 막상 닥쳐보니, 노동변호사랍시고 일하던 나의 남편은 가입한 상급 노동조합조차 없었다. “기업별 노조였어요?”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당연히 그럴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10% 남짓이고,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에 가입해 있는 근로자의 수는 많지 않다. 상급조직이 없는 노동조합의 협상력이야 빤하다. 산별노조나 총연맹에 가입해 있어도 노사관계에서 근로자의 힘은 사용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심지어 기업별 노조였다니. 내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면 “선생님, 정말 안타깝지만, 소송을 하셔도 부당해고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사측의 제안을 잘 살펴보시고 이직할 곳을 찾아보시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을 상황이다. 그런데 아이고 그 선생님이 내 남편이네!

구조조정의 순서는 직원이 10명이든 100명이든 1,000명이든 비슷하다. 우선 회사가 어렵다는 말이 돈다. 그 말이 이메일로 회람된다. 서면 공지사항으로 사내 게시판에 게시된다. 희망퇴직 조건이 공지된다. 그 조건 말미에는 꼭 사직서 제출 마감과, 이후 n차 희망 퇴직 시에는 동일조건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희망퇴직원을 쓰는 직원이 많지 않으면 공지가 또 나온다. 동일조건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구의 글자 크기가 더 커지고, 인원감축을 하겠다는 공지도 더해진다. 그 다음은 비교적 상냥한 1:1 면담이다. 그 다음은 상냥하지 않은 1:1 면담이다. 회사가 찍어내는 직원들도 있다. 1:1 면담을 종일 당하거나 근무지에서 훨씬 먼 곳으로 불려가는 직원들이 생긴다. 여기부터 변호사를 찾거나, 병원을 찾거나, 사직서를 쓰거나, 피켓을 드는 분들도 나온다. 근로자와 회사가 가진 자원은 대체로 불공평하다. 한 단계 한 단계 지날수록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노동조합이 없거나, 있더라도 상급단체가 없다면 개인이 오래 버틸 수 있는 길이 아니다.

희망퇴직 조건은 처음부터 좋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로, 희망퇴직의사를 밝힌 직원의 수도 매우 적었다. 2차 공지가 나왔다. 월요일부터는 면담을 시작한단다. 앞으로의 진행이 훤히 보였다. 법의 표현을 빌리자면 경영상의 이유로 하는 해고가 눈앞에 다가왔다. 구조조정은 뒤로 갈수록 가속되고 거칠어진다. 자원도 부족하고, 사직하는 직원들이 빠져나가면서 근로자 측이 수적으로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여러 번 보았고 대리인으로 거치기도 했다. 남편이 희망퇴직공지를 들고 귀가했던 때에도, 나는 노동조합 사건을 여럿 맡고 있었다.

우리는 투쟁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은 첫 1:1 면담에 사직서를 들고 들어갔다. 팀장이 좋아했다나. 나는 투쟁을 너무 열심히 했더니 나한테 전속 매니저가 생겼다는 농담을 했다.

그로부터 일 년, 어떤 동네에는 새 세상이 온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안타깝지만”, “혹시 노조는 없나요?”같은 말을 하며, 일하고 있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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