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권 동안 사업 지원 뚝
유족도 점점 세상 떠나 시급”
국회 계류 특별법 논의도 촉구
“사건 당시 열 살 아이던 유족이 이제 80세예요. 과거사를 청산하고, 치유하는 일을 더 늦출 수 없습니다.”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 박찬식(55) 운영위원장은 지난달 2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 때(2003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오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유해발굴과 피해구제 등 후속조치는 그후 15년간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관련사업 지원금이 뚝 끊긴데다, 국민들도 4·3사건을 제주도만의 역사로 인식하거나 아예 알지 못해 여론의 힘을 얻기도 어려웠다는 게 그의 얘기. 그사이 사건 목격자와 유족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났고, 남은 자들의 응어리는 커졌다.
제주 서귀포시 출신인 박 위원장 본인도 서울로 대학을 온 뒤에야 이 사건을 제대로 알게 됐다고 한다. “집안 어른들도 (4·3사건) 얘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성인이 돼서 물어봐도, ‘뭘 알려고 하냐’는 식이예요. 입 밖에 꺼내고 싶지 않으셨던 거죠.”
박 위원장은 “제주4·3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전국 20개 지역에 분향소를 마련했다”며 “오는 3일부턴 서울 광화문광장에도 분향소를 설치하고, 대형 퍼포먼스(3일)와 공연(7일)도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 4일엔 ‘4월 3일’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오후 4시3분, 403명의 시민이 참가한 43분간의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7일엔 43명의 유족으로 구성된 ‘4·3 평화합창단’에 유명 가수들이 참석하는 국민문화제가 열린다.
범국민위는 국회에 계류 중인 ‘제주4·3특별법 개정안’ 논의도 함께 촉구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1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내놓은 4·3 특별법 개정안엔 ▦희생자·유족 보상 ▦군사재판 무효화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추가 진상규명 등이 담겼다.
박 위원장은 “지난 2007년부터 생존자 증언을 토대로 제주공항 일대에서 벌인 발굴 작업을 통해 2년간 380여구의 유해가 발굴됐지만, 2009년부터 국비예산 지원이 끊기면서 발굴작업이 중단됐다”고 했다. 그는 “지난 두 정권 때는 예산이 없어 추도행사마저도 최소한으로 치러야 했다”며 “보수단체가 희생자 넋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제주 4·3평화공원에 와서 진상조사보고서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사건에 대한 폄훼 시도를 막는 데 급급한 시기였다”고 했다.
그는 제주4·3사건을 되돌아보며 대한민국이 인권과 법치라는 근대국가 기본적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철저히 반성하면서 인권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어두운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제주4·3사건을 제대로 직시했다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요?”
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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