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이상한 손님’ 백희나작가
남매에게 나타난 도깨비 천달록
그를 어르고 달래는 과정 그려
“수공으로 인물ㆍ세트를 만든 후
사진 촬영… 엄청 공들였어요”
달걀 귀신이 아니라 도깨비다.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ㆍ청소년 부문 수상작 ‘장수탕 선녀님’에서 선녀를 선보였으니 도깨비가 나올 법도 하다. 더구나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져 등장하는 ‘천달록’은 난폭하다거나 영악하지 않다. 사람에게 엉겨 붙고 같이 놀고 싶어 한다. 엉뚱하면서도 모자라 보이기도 한다. 그 행태가 딱 도깨비를 닮았다. 그런데 하얗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외모 때문일까. 책을 사본 엄마들 사이에서 “천달록은 달걀 귀신 아니냐”는 말이 나돈다.
그림책 ‘이상한 손님’(책읽는곰)을 최근 내놓은 백희나(47) 작가는 2일 “달록이는 도깨비가 맞다”고 했다. “문헌을 찾아보니 도깨비는 흰 바지 저고리를 입고 패랭이를 썼다고 해요. 누렁이 냄새가 나고 사람하고도 비슷하게 생겨서 ‘김서방’이라 불렸다고 하네요. 날씨를 주관하기도 했고요.” 달록이에게 소매가 긴 저고리를 입힌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린 도깨비니까 “배냇저고리처럼 입혀보고 싶었다”는 게 백 작가의 설명이다. 달록이의 등장은 “선녀님이나 도깨비처럼 우리가 어릴 적 들었던 존재들을 다시 불러내 아이들과 놀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손님’은 백 작가의 힘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난달 21일 출간되자 마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집계 유아 부문 1위, 종합 30위에 올랐다. 백 작가는 수공으로 인물과 세트를 만든 뒤 조명을 비춰 촬영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든다. ‘이상한 손님’에서 이 표현 기법이 제 힘을 내는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표정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펼쳐주면 내용은 둘째치고 등장인물들 표정만 보고도 자지러지게 웃어댄다. “이번 작품엔 인물 클로즈업이 많아 표정에 엄청 공을 들였는데 아이들이 좋아해준다니 너무 다행”이라고 했다.
스토리는 이렇다. 집에 둘만 남은, 사이가 별로 안 좋아 보이는 남매에게 천달록이란 희한한 놈이 나타난다. 달래주느라 빵을 먹이니 부엌을 다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방귀를 끼고, 아이스크림을 주니 온 집안에 눈이 빙수가루처럼 가득 내려 앉는다. 남매가 천달록을 어르고 달래느라 진땀 빼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나간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낯선 자에 대한 환대’다. 이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요즘 서유럽 사회의 화두이기도 하다. 천달록이라는, 정체 모를 희한한 놈에게 무언가 해주려 머리를 짜내고 애쓰는 남매의 분투는, 그 자체가 환대를 위한 노력이다. “우리 집 아이들도 그렇지만 공부처럼 자기 할 일만 잘하면, 자기에게 좋을 일만 잘하면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면죄부가 주어지는 현실이 걱정스러워요.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끔찍하게 이기적인 세상을 만들지 않을 까요. 아무 상관없는 누군가를,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꺼이 도우려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남매간 깊어지는 정은 덤이다. “아마 돕느라고 정신 없이 허둥대고 나면 남매간에 비밀스러운 유대감 같은 것도 생기지 않았을까요.”
백 작가의 최근작은 거의 발표시기가 매년 3월쯤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이상한 엄마’ ‘알사탕’에서 ‘이상한 손님’까지 그렇다. 완성도 때문이다. 본격적 작업은 여름철부터 다음해 2월까지다. 캐릭터, 세트 확정 짓고 시험 촬영을 해본 뒤 제작에 들어가 본 촬영을 마치는 기간이다. 작가 표현을 빌리자면 이 작업은 “모 아니면 도”다. 잘만 만들면 사실감이 확 살아나지만, 작은 디테일 하나라도 삐끗하는 순간 “에이 이거 가짜네!”라는 소리가 나와서다. 공 들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제일 어려운 건 이야기 구성이다.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를 책으로 엮을 만한 이야기로 숙성시키는 건 여전히 가장 부담스러운 일”이다.
‘희나 월드’의 탄생 여부도 궁금해진다. ‘이상한 손님’과 그 이전 작품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인 듯 하면서 어딘가 비슷하고, 스토리가 이어질 듯 말 듯 맞닿는 분위기가 난다. “맞아요. 세상은 참 좁지 않나요. 서로 다른 그림책이지만 그들이 마치 이웃인 것처럼 작업하고 있어요. 이 작은 그림책 세상에서도 우리 모두 서로 알게 모르게 이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것, 재미있지 않나요.” 환대의 철학은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는 답변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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