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가 3월 회의를 지난달 18일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어 최근 보도를 평가하고 개선점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인 이재경 위원장과 구현모(고려대 대학원) 김기주(한국리서치 이사) 오연조(상상스쿨 출판사 대표) 이윤정(칼럼니스트) 조원희(변호사) 위원, 간사인 진성훈 오피니언 에디터가 참석했다.
이재경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을 비롯한 미투(#Me Too)운동과 최근 정세가 급변한 한반도 상황, 이명박(MB) 전 대통령 수사 등을 위주로 논의하겠다. 3기 독자권익위원회 마지막 회의인 만큼 지난 1년 관찰한 누적된 이야기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다뤄도 좋겠다.
이윤정
3월 지면개편 이후 눈에 띄는 기획들이 많다.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는 반발이 많거나 관심이 없을 수 있는데 과감하게 기획했다. ‘이온공감’은 온라인 감성을 살리려 노력했다. 이런 새로운 포맷의 기사가 모바일에서 소통된다. ‘3월엔 ‘울타리’ 밖으로…보육원생 슬픈 성년식’(3월10일자 1면)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취재해 눈에도 많이 띄고, 감동적이었다. MB수사의 경우 표적수사 프레임을 피하고,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접근했다. 남북정상회담도 트집잡기 식으로 가지 않고 맥락을 짚으려 했다.
미투는 사회에 뿌리내려 있는 문제다. 폭로가 안 되는 곳이야말로 폭로하기 어려운 구조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직사회, 미투 무풍지대인 까닭은’ ‘대기업선 잠잠한 미투…정화 시스템ㆍ무관용 효과’ 기사는 기업 등을 변호하는 자세에서 접근했다고 느꼈다. 칼럼 ‘아침을 열며: 남성중심주의의 종언을 향해’(3월16일자)는 여성과 약자에 대한 폭력의 일상화라는, 미투 문제의 핵심을 잘 다뤘다. 미투운동 보도는 하나하나 문제점을 짚어 나가기 보다 캠페인 식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오연조
워낙 큰 정치적 이슈가 많아 밀착형 기사는 거의 묻혀버렸다. 다만 지면개편 영향으로 커버스토리, 인터뷰 등 결이 다른 기사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영농의 문법, 뒤집는 2030 스마트 파머’(3월17일자 1면)가 눈에 띄었다. 미투 시론인 ‘미투에 고발자 보호와 적폐 청산으로 응답하라’(2월22일자)는 다른 언론이 폭로성 기사, 가해자 입장 전달 기사에 치중했을 때 명징한 입장과 방향을 제시했다. ‘회식에서 사라진 “노래방 2차~”’(3월13일자)같은 기사는 굳이 필요했나 싶다. 자칫하면 미투 운동으로 피해보는 사람이 있다는 프레임에 갇혀 본질이 왜곡되는 부작용이 있다.
남북회담, 북미회담 관련 보도는 사안 자체가 취재해서 보도하는 게 아니라서 대부분 신문 기사가 비슷했다. 구체적으로 회담 이후 우리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되고 뭐가 바뀔 것인지에 대한 분석기사가 (적어) 아쉬웠다.
평창 동계올림픽, 패럴림픽 경기를 그날그날 한국일보 제호에 그래픽으로 소개한 것을 칭찬하고 싶다. 지난해 시작한 기획 ‘겨를’과 ‘끌림’은 제대로 지면이 자리를 잡지 못한 것 같다. 한국일보의 장점인 문화, 인물 중심으로 보완해 알차게 오래오래 가길 바란다.
조원희
1면에 뽑기 어려운 기사나 다루기 힘든 이슈들, 사회에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사안을 과감하게 1면 기사로 다뤄 신선하고 좋았다.
김기주
MB사건 보도에서 소설 같은 이야기, 논란되는 이야기가 없었다. 공개된 내용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지역경제 르네상스’ ‘강소기업이 미래다’는 새로운 시도다. 세부 사항의 소개 수준을 넘어 전문가의 대안, 직언까지 해 주면 좋겠다. 강소기업을 기업단위의 소개보다 산업 부분에서 정리를 한다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3월은 기사보다 칼럼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 좋은 논쟁점들을 제시해 줬다.
이재경
최근 한국일보와 문재인 정부의 거리가 느껴진다. ‘구조조정 올스톱… 경제가 곪는다’(3월 2일자 1면)가 그 중 하나다. 적폐청산이 중요하지만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은 너무 정치로 쏠려가면서 구조조정을 제대로 얘기하는 매체들이 많지 않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비즈니스 현장의 이야기를 잘 다뤄 준 기사다. ‘욕창 관리ㆍ수액 주사… 무면허 의료에 맡겨진 요양원 노인들’(3월 9일자 11면)은 아무도 다루지 않은 요양병원 간호사들 문제를 다뤘다. 요양병원은 모든 집안의 문제인 만큼 르포 취재를 하면 파장 큰 기사들이 나올 수 있다. 스포츠 면의 새 기획인 ‘난, 아마추어 스타’는 아마추어 스포츠 전문가들 이야기인데, 휴먼스토리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강소기업, 지자체 관련 기사들은 다른 데서 다루지 않는 내용이고 비즈니스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기획이다. 그런데 ‘지자체ㆍ公기관 243곳 일자리 연대 첫발’(3월9일자 1면) 기사는 홍보 같다. PR와 저널리즘의 경계가 애매하지만 좀 더 저널리즘 관점으로 가야 한다.
구현모
평기자 칼럼 ‘36.5도: 나의 미투 극복기’(2월27일자)는 자성적으로 기자의 입장에서 조직에 대해 이야기해 의미가 있었다. 미투 운동에는 다양한 결이 있다. 의혹만 터져도 30년 전 이야기를 그대로 기사로 때리는 언론도 있고, CBS는 단역 배우 자매 자살사건을 재조명하고 어머님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서울대 우 조교’ 사건도 다른 언론에서 조명했다. 예전에는 풀지 못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계성 논설고문의 ‘논담’(3월9일자)은 기사의 분량을 늘려도 좋을 듯하다. ‘밀양 화재 참사 한 달’(2월26일자) 보도가 좋았다. 그때 당시의 이슈만 조명하고 나중에는 방치하는 언론 관행에서 벗어난 기획이었다. ‘한달 만에 찾아온 이별…눈물바다 이룬 남북 자매’(2월27일자) 기사는 세대차이를 느꼈다. “남북 자매라니, 다 외동일 텐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휠체어로 지하철 환승, 40분이나 걸렸다’(3월9일자) 르포기사를 평가하고 싶다. 새 주말 기획인 ‘변태섭 기자의 교과서 밖 과학’은 논문을 다수 인용해 과학전문지에서나 봤을 법한 내용을 다뤘다.
김기주
신문의 위기에 가슴 아프게 공감한다. 종이 신문의 정보전달 시스템 자체가 현재 국민이 가지고 있는 정보습득 체계와 맞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회의 중요한 성향과 패턴을 가진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다. 1982년 이후 2000년까지 태어났다. 밀레니얼 세대는 관습에 단순 저항만 하지 않는다. 관습과 지배의 구조적인 모순을 공개 비판하고 아예 깨버리려 하고, 이를 위해 연대한다. 미투 운동이 대표적이다. ‘올드’하다고 느끼는 40,50대마저도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따라간다. 미디어 입장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각에서 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이재경
미디어를 공부하는 학자로서 한국일보가 무엇을 보도하는가 보다, 어떻게 보도하는가를 더 주시해서 봤다. 그런 관점에서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다.
먼저 디지털 전략이다. 종이신문의 미래는 제한적이다. 결국 신문이 멀티미디어 회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 부분의 준비가 덜 된 느낌이다. 온라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도 그렇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는 기사 하나를 낼 때 멀티 플레이를 같이 한다. 지난달 한국일보가 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다섯 개 부분에서 두 개나 받았다. 그 중 하나가 MB 정부에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지낸 김희중 씨 인터뷰 기사다. WP였으면 인터뷰한 오디오를 같이 서비스했을 것이다. 한국일보도 아직 늦지 않았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디지털이 아니라 저널리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점이다. 테크놀로지를 화려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거기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같이 디자인해야 한다. 저널리즘이 중심이어야 한다.
한국일보가 기획기사를 굉장히 잘 쓴다. ‘3월엔 울타리 밖으로… 보육원생 슬픈 성년식’ 기사는 감동적인 스토리였다. 디테일이 많이 들어있고 기사작성 실력도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한국일보에 크레디트를 줘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미투는 ‘손석희’에게로 다 간다. 큰 어젠다로 끌고 가는 힘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퀄리티 관점에서 보면 한국 매체들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매체 브랜드를 인지하는 굉장히 중요한 인덱스가 어떤 어젠다를, 얼마나 끌고 가서, 세상을 바꿔 놓는지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기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관한 거다. ‘배신엔 죽음뿐, 푸틴정권의 잔혹 메시지’(3월 21일자 2면)는 아주 잘 쓴 기사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기사다. 흡입력이 좋고 잘 읽히는 기사인데 취재과정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국내에서 외신을 종합해 작성했다면, 그 과정에 들어간 ‘재료’를 다 보여주는 게 옳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투명성에서 먼저 앞서 가야 한다. 사람들이 ‘소시지’를 의심한다면 그 ‘소시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1년 내내 익명, 가명을 사용하는 문제를 말씀 드렸다. 우리나라가 크지 않아 살짝 만 이야기해도 누군지 충분히 다 드러난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익명의 기사를 보면서)정말로 취재 했을까, 이 사람이 그 사람일까, 장난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획기적으로 줄일 내부 토론이 필요하다. ‘알려졌다’ ‘전해졌다’라는 표현이 너무 많은데, 기사는 전설이 아니다. 어떻게 취재했는지 경로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경로들은 적어도 그럴 법하다는 것을 독자들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일보는 이 정도 수준이 아니면 기사를 취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논의되고, 독자들과 공유되면 훨씬 좋은 퀄리티의 기사를 만들 수 있다. 독자들이 떨어져 나가는 이유는 상품 퀄리티가 다 똑같아서다. 온라인과 차별성이 없는데 굳이 이 신문을 읽어야 하나.
진성훈
신문을 보는 게 힘든 일이다. 매일, 한 달, 1년 동안 신문을 읽느라 고생 많으셨다. 신문제작자 입장에서 당연하다고 느꼈던 부분도 밖에서는 당연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정리=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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