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후보 파브리시오, 패했지만 중남미 보수-복음주의 연대의 힘 증명
중남미 국가 코스타리카의 대선 결과 동성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집권당 후보가 복음주의 성향 야당 후보를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1일(현지시간) 코스타리카 대선 결선에서 집권당인 중도 좌파 시민행동당(PAC)의 카를로스 알바라도 케사다(38) 후보는 61% 지지를 얻어, 복음주의 우파 성향인 국가중흥당(PRN) 소속 파브리시오 알바라도 무뇨스(44) 후보를 압도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카를로스는 코스타리카 공화국 수립 이래 최연소 국가 지도자가 된다. 카를로스 당선인은 연설에서 “이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고 전진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며 “카를로스 알바라도나 PAC만이 아닌 모든 코스타리카인들을 대변하는 정부를 수립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카를로스가 당선된 가장 큰 요인으로 현지 언론이 주목한 것은 중도 유권자의 결집이다. 복음주의 성향이 지나치게 강한 우파 정치인 파브리시오가 집권하면 종교와 도덕성에 치우쳐 통치할 것이란 두려움이 세속주의 투표자들을 투표소로 불러들였다. 마치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마린 르펜의 집권을 두려워한 유권자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선출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중도 진영 결집으로 투표율도 올랐다. 이번 결선의 투표율은 67%로, 2014년 대선 결선(56.5%)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올랐고 올해 2월 1차 투표(66%)보다도 오히려 1%포인트 높았다. 코스타리카 일간지 나시온의 아르만도 곤살레스 편집장은 “사람들이 공포에 빠졌고, ‘이것만은 안 된다’는 생각으로 투표장으로 향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선거에 패했지만 파브리시오의 선전은 조용한 민주 국가 코스타리카에도 중남미에서 성장하는 복음주의와 보수 진영의 결합이 성공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카를로스와 파브리시오 사이에서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던 동성혼 논쟁은 대선 이후로도 상당한 진통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카를로스는 동성애자 차별 금지 정책에 동조한 기독사회단결당(PUSC)의 대선 후보 로돌포 피사와 손을 잡고 연정을 준비하고 있지만, 1차 대선과 동시 치러진 총선에서 파브리시오가 속한 PRN이 양대 정당으로 급성장해 정권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브리시오는 이날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오늘 승리한 것은 민주주의”라며 “생명과 가족, 도덕을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코스타리카만의 현상이 아니다. 2017년 칠레 대선에서 승리한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선거운동본부에 복음주의 대주교 4명을 포함시킨 바 있다. 브라질에서 수도 리우데자네이루 시장 마르셀루 크리벨라를 배출한 브라질 공화당(PRB)은 ‘신의 왕국의 보편 교회’와 긴밀한 관계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3%에 불과했던 중남미 복음주의 기독교도는 20%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 앰허스트대 하비에르 코랄레스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한때 로마 가톨릭 해방신학만이 주류였던 중남미에 복음주의가 확산하면서 보수 정치권에는 없었던 비엘리트 집단의 연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