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결핵 AIDS 같은 질병을 비유ㆍ상징의 수단으로 이용해 품위 있는 말ㆍ글이 되는 예는 드물다. 옳지도 않고, 설득력을 얻기도 힘들다. 신체나 정서ㆍ지적 장애(자)와 관련된 어휘를 의학ㆍ의료의 문맥 바깥에서 누군가를 겨냥해 사용하는 건 혐오스러운 일이다. 그런 말ㆍ글은 가리키는 대상의 특징이나 가치보다 발화자의 인격을 의심케 한다. 한국의 유력 정치인 중 상당수는 신체적 장애나 특징, 지성을 조롱하는 어휘들을 사회적 호(號)처럼 달고 살아야 했다. 특정 정치인ㆍ정파에 대한 맹목의 충성심을 과시하는 이들을 ‘자폐증(自閉症) 환자’에 비유하는 예도 SNS 등에 흔히 등장한다. 그 비유 역시 무례이고 모욕이다. 자폐증이란 말을 습관처럼 쓰면서도 다양하고 각기 다른 증상을 파악하는 이는 아마 극소수일 것이다.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자료에 따르면 자폐증(Autism)은 3세 이전에 발현해 증상의 진퇴는 있으나 거의 평생 지속되는 발달장애의 한 종류로, 언어 표현-이해 능력 장애와 애착행동, 반복행동, 놀이행동의 위축, 지능 등 인지발달의 저하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선천적 원인에 의해 발현된다는 게 정설이지만, 구체적 원인은 아직 확정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증상 진단도 정밀하게 섬세한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자폐증 환자는 세계 인구의 약 1%로 추정된다.
여느 질환ㆍ장애와 마찬가지로, 자폐증 환자와 가족 등 주변인은 고통을 겪고, 사회적으로 인권의 취약한 자리에 노출되기 쉽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서번트 증후군과 혼동해서 무슨 천재인 양 미화하는 것도 결코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2007년 유엔 총회는 매년 4월 2일을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World Autism Awareness Day)’로 정했다. 소외와 몰이해로 이중의 고통을 겪는 이들의 존재를 사회가 인식하고 삶의 질을 개선해, 더불어 보다 온전한 삶을 살자는 취지의 날이다. 문명사회는 이날 그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상징하는 푸른 색 조명을 밝히며(Light it up Blue) 캠페인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유엔은 올해의 주제를 ‘자폐증 여성ㆍ소녀의 힘 북돋우기(Empowering Women and Girls)’로 정했다. 여성ㆍ소녀 자폐증 환자들이 교육과 성, 임신ㆍ출산 보건, 취업 등 여러 면에서 남성 환자에 비해서도 더 차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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