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경계에 선 소방관들
화재 진압ㆍ구급 인력 부족한데
숱한 생활민원 출동 시달리고
허술한 장비로 툭하면 부상까지
순직률 전체 공무원의 3배 달해
아산 사고 동료 순직 접하고도
“유사 신고 받으면 지체 없이 출동”
소방관 재직 27년째인 충남 아산소방서 서모 소방위는 10여 년 전 물에 빠진 사람을 찾으려 물속에 들어갔다가 고막이 파열되는 등 10차례나 부상을 당했다. 1일 유기견 구조도중 대형 트럭에 치여 숨진 김신형(28) 소방관과 교육생 등 3명의 빈소가 차려진 충남 아산시 온양장례식장에서 만난 서 소방위는 화재진압 도중 다쳐 손가락 두 개가 굽혀지지 않는 오른손을 보여 주며 “손이 매우 불편하지만 훈장처럼 생각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서 소방위는 “우리 일은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라면서도 “사명감과 보람으로 일하기에 3일 전 참사처럼 비슷한 구조 신고가 접수되면 지체 없이 현장으로 뛰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 소방위나 김 소방관의 사례처럼 전국 소방관들이 위험한 현장에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소방관 순직률은 연 평균 4.2명이다. 10년간 공무상 사망률은 전체 공무원의 3배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곳에 투입됐다가 변을 당하고도 정부의 적절한 예우를 받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 인명 구조 등을 주 업무로 하는 구급대원이 인력부족을 보다 못해 진화에 나섰다가 숨진 일도 있었다. 2003년 2월 13일 경기 포천소방서 소속 윤영수(당시 34) 소방장은 포천의 한 플라스틱 공장에서 난 화재 현장에 동료 대원 4명과 함께 출동했다. 그러나 소방인력 부족과 인화성 물질 때문에 진화가 어려워지자 그는 직접 소방호스를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불이 어느 정도 진화됐을 무렵 잔해를 수색하던 중 갑자기 무너진 공장 건물 콘크리트에 깔려 숨졌다.
구급대원이 구조현장이 아닌 진화 작업에 동원됐다 사망한 것은 윤 소방장이 처음이었다. 동료 소방관들은 “유독성 가스가 다량으로 발생하는 화재 현장의 경우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이 상존한다”며 “이런 현장에 화재 진화에 숙달되지 않은 구급대원이 투입된다면 사고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엄연한 업무의 일부이지만 인명구조가 아닌 대민 지원 중 사고를 당할 경우 국립묘지 안장이 거부되는 일도 있다. 2011년 7월 속초소방서 김종현(29) 소방교는 학원건물 3층에 있는 고양이 구조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로프가 끊어지면서 10여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김 소방교는 당시 대민 지원 중에 사고를 당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국립묘지 안장이 거부됐다. 뒤늦게나마 관련 법률이 개정돼 사고발생 3년이 지난 2014년 6월에야 국립묘지에 안장됐지만 그간 유족들은 적잖은 고통속에 살아야 했다.
허술한 장비로 인해 화상을 당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지난 2월3일 대구 소규모 숙박업소 화재현장에서 D(45)소방관은 숙박객 17명을 구조하다 방화복이 화염에 일부 녹아 내려 왼쪽 어깨와 오른손에 큰 화상을 입었다.
소방 관계자는 “소방관은 사소한 생활민원까지 해결해야 하는 맥가이버가 돼야 하는 실정”이라며 “긴급 구조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제도는 물론 직무 범위를 명확하게 하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산=글ㆍ사진 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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