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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입력
2018.04.01 11: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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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두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법은 이익투쟁으로 시작해서 균형으로 수렴한다. 헌법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의 대립구도와 논쟁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며,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국민이 안 보인다.

87년 체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헌법은 한 사회의 큰 테두리와 방향을 정하는 근본적인 규범이다. 따라서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를 녹여내고, 미래를 배려해야 한다. 이를 고려해볼 때 현행 헌법은 지난 30년의 변화상황을 담고 있지 않다. 당시의 현재는 역사로 남았고, 미래는 현재가 되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종이에 쓰인 헌법의 불완전함이 명백해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헌법을 개정하는 일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위에서 시작되어 아래로, 다른 하나는 아래에서 시작해서 위로 가는 경우다. 가장 좋은 것은 아래에서 구체적인 수요가 정치적 의지로 표출되고, 위에서 이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헌법개정 논의는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형국이다. 대통령 발의안도 그리고 국회 개헌특위의 밑그림 모두 마찬가지이다. 87년 이후 수차례 헌법 개정을 위한 국회차원의 특위들이 있었지만 대체로 일 년여의 짧은 활동기간으로 역시 국민과의 소통은 없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어느 날 헌법개정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느낌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일부 기본권 조항이 신설ㆍ강화된 것으로 국민을 위한 헌법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경제질서, 사법제도, 권력구조, 지방분권 등에도 국민의 의지가 반영되어야 한다. 이 모두가 직ㆍ간접적으로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소통은 물론, 국민의 눈높이에도 맞추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상대를 인식하고 배려하는 것을 설득을 위한 수사학의 기초로 보았다. 예컨대, 토지공개념의 경우, 제도가 주는 이점과 초래될 수 있는 문제점을 고루 설명하고 선택을 구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보니 선술집 대화처럼 한쪽에서는 사회적 정의다, 다른 쪽에선 사회주의다 라는 격한 언성이 나오는 것이다.

헌법 개정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제시된 안 모두 타당한 이유와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제도는 책임과 부담을 전제로 하고, 이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한다. 결국 사회구성원 다수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이 중심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투표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국민은 일방적으로 주어진 안을 선택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과거에 비해 국민들은 훨씬 더 똑똑해졌고 의식도 성장했다.

2000년 일본 중의원은 개헌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기초자료 마련을 위해 조직을 설치한다. 중의원 헌법조사회는 무려 5년 동안 정치구조는 물론이고 경제, 생명윤리, 정보, 인구 등 국민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 및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취합했다. 아울러 전국 9개 지방 및 총 5일에 걸친 중앙공청회를 열고 국민들의 의견을 들었으며, 공청회 의견진술자는 공모를 통해 선정되었다. 2005년 4월, 보고서가 의회에 제출되었다. 보고서의 서문 첫 장은 이렇게 쓰여 있다. “헌법은 국민의 것 – 여당도 야당도 없다. 늘 국민의 시선으로 논의하자”

대통령의 헌법개정안 발의는 토론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한다. 국회차원에서 개헌안에 대한 논의와 절충을 통해 여야 합의안을 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 과정 어디에서도 국민을 쉽게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국민이 바로 헌법제정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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