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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내친구]<3> 페기 페리스, 초강대국 미국의 보통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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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내친구]<3> 페기 페리스, 초강대국 미국의 보통사람

입력
2018.03.30 20: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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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장서 무려 50년 근속했지만

안정 대신 끝없이 공부하고 도전

내 친구 페기(왼쪽)와 나.
내 친구 페기(왼쪽)와 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은 괴짜 지도자가 있어도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아주 많은 훌륭한 ‘보통 사람’들이 저변을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6년 동안 나이는 크게 달라도 마치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페기를 소개해보고 싶다.

미국에서는 나이가 달라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 25년전 미국에 어학연수를 하러 갔다가 알게 되어 이후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는 페기 페리스가 그런 경우다. 20년 이상의 나이 차이를 초월해 페기를 통해 미국인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 됐다.

페기는 평생 한 회사에서 50년을 일했다. 그 회사는 디즈니다. 나는 미국인은 자주 직장을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페기를 통해서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페기는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고교를 졸업한 65년 동네에 있는 디즈니랜드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손님들이 보트에 타면 마이크로 친절하게 라이드에 대해 설명하고 안전하게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었다. 페기는 이후 캘리포니아주립대 영문과를 다니면서 계속해서 디즈니랜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인연이 50년간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페기의 디즈니에서의 여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여러 번 좌절이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이어졌다. 페기는 대학시절 디즈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디즈니랜드 앰버서더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디즈니 홍보대사를 뽑는 이 프로그램에 3번을 도전했지만 그녀는 최종합격자로 선발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성실한 그녀의 모습이 몇몇 디즈니 사람들의 눈에 들었다. 그래서 플로리다에 막 건설하기 시작한 월트디즈니 월드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다.

디즈니 만화 주인공 캐릭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페기 페리스.
디즈니 만화 주인공 캐릭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페기 페리스.

하지만 플로리다 디즈니월드에서 일하던 중 구조조정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원래 원하던 오퍼레이션매니저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를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LA의 ‘디즈니 이미지니어링’이란 회사로 옮길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기업과 제휴하는 일을 담당하게 된다.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를 자세히 보면 코카콜라, 제록스, 코닥, AT&T 등 스폰서 회사들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이런 회사들을 끌어오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페기가 하는 일이었다. 파리, 도쿄, 홍콩 등 새로운 곳에 디즈니의 테마파크가 오픈할 때마다 그녀는 할 일이 많았다. 회사와 함께 성장해 간 것이다.

페기는 다른 동료들은 모두 은퇴할 즈음인 환갑을 넘긴 나이에 또 새로운 일을 맡게 된다. 2010년 파리 디즈니랜드의 이미지니어링 지사를 총괄하는 일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캘리포니아 토박이로 평생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를 오가며 일했던 페기에게 낯선 외국으로 이주해서 이방인들로 구성된 팀을 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나이에 대개는 제안을 거절하고 편안한 삶을 택하겠지만 페기는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였다. 5년간의 파리 근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페기는 2016년 고향 캘리포니아로 복귀했고 동료들의 축하 속에 50년 근속상을 받고 디즈니를 퇴사했다.

조직에 대한 로열티 이외에 내가 페기에게 감탄하는 점은 넘치는 호기심을 통한 평생 배움의 자세다. 페기는 우선 책을 좋아한다. 처음 만나자마자 내게 가르쳐준 것이 동네 도서관을 이용하는 법이었다.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긴 출퇴근 시간 동안 차에서 항상 오디오북을 듣는다. 주말에는 뉴욕타임즈를 정독한다. 파리에 가서도 지인들과 독서클럽을 조직했을 정도다.

또 페기는 업무에서 모르는 것을 마주치면 피하지 않고 공부를 통해서 자신을 업그레이드했다. 20여년전 새로운 업무를 맡았다가 내부수익률(IRR), 순현재가치(NPV) 등 알 수 없는 용어를 듣게 됐다. 그게 재무관련 용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UCLA 익스텐션(평생교육원)에 등록해 주말마다 재무회계수업을 들었다. 공부에 재미를 붙인 페기는 이후 계속해서 프로젝트매니지먼트 등 업무와 연결되는 각종 비즈니스 코스를 40개 이상 UCLA익스텐션을 통해서 마쳤다. 뭔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관련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배운 것을 바로 써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페기는 디즈니에서 처음 만난 한 남자만을 평생 사랑하고 한번도 결혼하지 않았다. 리치는 페기가 디즈니랜드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시작할 때 매니저였다. 그들은 이후 50년간 한 동네에서 살면서 부부처럼 지내왔다. 하지만 둘 다 한번도 결혼한 일이 없는, 결혼하지 않고도 행복한 보기드문 커플이다.

페기는 엘리트는 아니다. 아이비리그스쿨을 나와서 월가은행이나 유명 컨설팅회사에서 일하다가 MBA학위를 받고 고위임원으로 고액연봉을 받는 그런 경우는 아니다. 미국 중산층 출신으로 평범한 주립대를 나와 자신이 하는 일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온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디즈니안에서 좌절도 있었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모든 일에 긍정적인 자세로 열심히 하다 보니 계속 예기치 않은 기회를 얻게 됐고 50년 근속을 하게 된 것이다. 회사를 옮기지 않았으니 안정을 추구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맡아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페기는 자신의 커리어를 ‘우연한 커리어'(Accidental career)라고 말한다.

페기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UCLA의 익스텐션 졸업식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그 기조연설은 이렇게 끝난다. "호기심이 당신을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길 바랍니다. 당신이 안정적인 자리를 떠나 흥미로운 사람들과 일하며 당신의 열정을 쫓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용기를 갖길 바랍니다."

나도 미국에서 경영대학원에 진학할 때 에세이리뷰를 페기에게 받는 등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면서 배워왔다. 페기는 은퇴후인 지금도 여전히 뭔가를 배우고 열심히 독서를 하는 풍성한 삶을 살고 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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