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건당국 “커피 마셔도 괜찮다”

감자튀김ㆍ비스킷서도 검출
함량 적어 인체 발암 가능성 낮아
캘리포니아주 환경ㆍ식품규제 엄격
“로펌 현상금 사냥 탓” 지적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커피에 발암 경고를 붙이라는 판결이 나온 29일 로스앤젤레스의 한 스타벅스 커피숍 앞에서 변호사 달링턴 이베크웨가 커피를 든 채 미소 짓고 있다. 이베크웨는 "암 경고가 신경 쓰이지만 일주일에 세 번 마시는 라테를 끊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카운티 고등법원이 29일(현지시간) 전세계 커피업계를 뒤흔든 ‘발암 경고’ 표시 의무화 판결을 내렸다. 핵심 근거는 커피를 로스팅(볶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 화학물질 ‘아크릴아마이드’ 때문이었다.

아크릴아마이드는 2002년 스웨덴 식품안전청의 보고서를 통해 인류가 섭취하는 식료품에 포함된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이후 수 차례 동물 실험에서 아크릴아마이드로 인한 발암ㆍ신경 훼손 증상이 나타나자 국제암연구소(IARC)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은 아크릴아마이드를 2등급(유력)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그러나 우리 일상생활에서 아크릴아마이드가 포함된 음식은 흔한 편이다. 아크릴아마이드는 환원당과 아미노산의 화합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의 산물이다. 커피뿐 아니라 감자튀김이나 빵 등 탄수화물 성분이 많은 식재료를 섭씨 120도가 넘는 고온에서 조리하면 아크릴아마이드가 나타난다. 통상적으로 매우 뜨겁게 조리하는 커피 특성상, 아크릴아마이드 함유를 피하기는 다른 음식보다도 더 어렵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현재로서는 아크릴아마이드가 동물 실험처럼 인체에 암을 유발한다고 확언하기에는 표본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IARC는 2016년 “커피 자체가 암을 유발한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미 매사추세츠공과대 생물학 교수 로버트 와인버그는 “살아있는 사람은 때때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은 암에 걸린다. 커피와 암의 연관성은 그 정도”라고 설명했다.

지난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스타벅스 커피전문점에 붙은 경고문구 위로 한 고객이 커피에 우유를 붓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나온 것은 미국에서도 특히 유별날 캘리포니아주의 엄격한 환경ㆍ식음료 관련 규제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는 1986년 주법률로 제정된 개정 65항에 따라 발암물질로 알려진 물질 목록을 만들고, 이 물질이 포함된 음료 판매자가 판매 시 이를 사전 고지하도록 정하고 있다. 아크릴아마이드는 1990년부터 이 목록에 발암물질로 등재됐고 2011년에는 남성 생식장애와 발달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도 추가된 상태다.

이를 근거로 2010년 캘리포니아 소재 비정부기구 독성물질교육조사위원회(CERT)와 그 법률대리를 맡은 로펌 메츠거그룹은 2010년 커피회사들이 커피에 아크릴아마이드가 포함됐음에도 이를 고지하지 않았기에 주법률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스타벅스 등 커피회사들은 “커피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맛의 변화 없이 아크릴아마이드를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커피가 개정 65항 적용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타벅스가 주축이 된 커피업체들은 1심에서 아크릴아마이드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으나, 원고 측 논리를 압도하는데 실패했다. 2심부터는 커피를 통해 섭취하는 아크릴아마이드는 인체가 감수할 만한 수준이라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대신 커피가 간질환이나 제2형 당뇨, 알츠하이머병 등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 등을 동원해 커피 예찬에 나섰다. 그러나 재판부는 “커피가 인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피고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며 이를 무시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미 커피업계 이전에 패스트푸드 기업이나 제과업체 등도 유사 소송에 휘말린 바 있다. 캘리포니아주 패스트푸드업체들은 2007년부터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조리를 덜 뜨겁게 하는 방식 등으로 아크릴아마이드 함량도 줄였다. 반면 커피업체들은 아크릴아마이드를 줄일 방법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커피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전미커피협회(NCA)의 윌리엄 머레이 회장은 성명을 통해 “미국인의 건강식 중에 하나인 커피의 소비자들을 잘못된 정보로 혼란시키는 소송”이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이번 소송이 건강과는 아무 관계 없는 돈 문제 때문에 벌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번 재판에서 CERT를 대변한 로펌 메츠거 그룹은 이미 2008년 감자칩 제조사들에 유사한 소송을 제기해 벌금 300만달러를 내고 아크릴아마이드를 제품에서 제거한다는 조건으로 합의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일부 로펌이 수임료를 노리고 개정 65항을 악용해 기업을 상대로 현상금 사냥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고 전했다.

22일 로스앤젤레스의 한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고 있는 모습.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한편 한국 보건당국은 신중하지만 “소비자들이 지금까지의 커피 소비행태를 유지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016년 식품 400여 품목 24만건에 대해 총 64종의 유해물질 위해 평가를 실시하면서 아크릴아마이드의 노출량도 조사했지만 위협 요인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조사결과 감자스낵, 감자튀김, 비스킷류, 커피 등에서 아크릴아마이드가 검출됐는데 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1㎏당 감자튀김ㆍ감자스낵의 경우 0~1,590㎍, 커피의 경우 0~818㎍이 검출됐다. 식약처는 “지금까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식품을 통한 아크릴아마이드 섭취의 경우 양이 미미해 인간이 암에 걸릴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식당에 조리법 변경을 권고ㆍ지도하는 등 국제적 권고치인 ㎏ 당 1,000㎍ 이하로 낮추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감자를 조리하기 전 섭씨 60도 물에 45분간 담그면 아크릴아마이드 생성량이 85%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감자를 냉장 보관하면 환원당이 증가하여 아크릴아마이드 생성량이 증가한다. 또 고기를 구울 때 후추를 뿌리면 아크릴아마이드 함량이 증가하므로 조리 후 섭취 직전에 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식약처는 권고했다. 안만호 식약처 대변인은 “2016년 조사 결과로는 아크릴아마이드가 국내 섭취량에 비춰 크게 위해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도 “커피의 경우 국내 섭취량이 늘어나고 있어 다시 한번 실태조사를 하고 위해 여부를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진주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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