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여전히 꿈 같은 마음… 정권 바뀌고 명예회복 이뤄져”
“고향에 돌아가 바다에 낚시 바늘을 넣어 놓고 통영 경치에 취해 살고 싶다”는 바람은 생전에 이루지 못했다. 양지바른 고향 땅 언덕에 파도소리를 들으며 묻히고 싶다던 마지막 소망은 23년 만에 현실이 됐다.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유해가 그의 고향 경남 통영으로 돌아왔다. 49년 만의 귀향이다.
30일 오후 통영 도남당 통영국제음악당 뒤뜰에서는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에 앞서 윤 작곡가 추모식이 열렸다.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옮겨 온 윤 작곡가의 유해는 20일 이곳에 안치됐다. 유가족이 조용한 절차를 희망해 비공개로 먼저 치러졌다. 윤 작곡가의 부인 이수자(91) 여사는 추모식에서 “우리의 인생은 슬픔의 연속이었지만, 민족과 역사에 어긋남 없이 살아왔기에 언젠가 나라에서도 남편의 가치를 알아줄 거라 믿었다”며 “너무나 감사드리고, 여전히 꿈 같은 마음이다”는 소감을 밝혔다.
묘역은 98㎡규모로 유해는 너럭바위 아래 자연장 형태로 안치됐다. 너럭바위에는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을 이르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사자성어를 새겼다. 지난해 8월 이 여사가 묘지 이장 희망의사를 표한 뒤 11~12월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독일을 방문할 정도로 절차는 일사천리였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과 독일을 공식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베를린 묘소에 옮겨 심은 통영의 동백나무가 시작이었다. 올해 2월 베를린 시장의 이장허가 승인이 났고 같은 달 23일 윤 작곡가가 묻혀있던 베를린 가토우 명예묘지를 개장했다. 유해는 이틀 뒤 통영에 도착했다. 이 여사는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걸 느낀다”며 “문 대통령 내외 두 분 덕분에 남편의 명예회복이 많이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가족 등 관계자와 언론을 비롯해 100여명이 참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셋째 아들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추모사를 통해 “생전 민족화합과 한반도 평화를 갈망하던 윤이상 선생의 꿈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지금 우리는 볼 수 있다”며 “위대한 음악가가 정치이념싸움에 희생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한다”고 했다. 플로리안 리임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는 “윤 작곡가의 진정한 복권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베를린을 근거지로 음악 활동을 한 윤 작곡가는 1967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다. 국내에서는 이념 논란 등으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지만, 해외에서는 ‘동양의 사상과 음악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시켜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 등으로 불린다.
한편 지난달 말부터 통영시청 인근에서 윤이상 유해 이장 반대 집회를 이어 온 ‘박근혜 무죄 석방 천만인 서명운동 경남본부’ 등 보수단체 회원 30명 가량은 이날도 통영국제음악당 주차장에 모여 이장 반대를 주장했다.
통영=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