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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되살아난 '죽의 장막'

입력
2018.03.30 14:5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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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5일부터 나흘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중국과학원을 방문해 전시장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5일부터 나흘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중국과학원을 방문해 전시장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일요일인 25일 오후 녹색 외관에 노란줄을 두른 21량의 기차가 평양을 출발, 시속 70km 안팎의 속도로 15시간 남짓 달려 이튿날 중국 베이징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일행은 여기서 회담장인 인민대회당으로, 숙소인 댜오위타이로, 다시 숙소에서 중관춘으로, 오찬장으로 다음날까지 시내를 휘젓고 다녔다. 그런데도 전 세계 정보기관과 언론들은 뒤늦게 어떤 낌새를 맡았지만 뭔지 몰라 허둥댔다. 김정은이 같은 기차로 28일 오전 북한으로 돌아온 후에야 그가 부인 리설주와 함께 중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진 전모가 북한 중앙통신과 중국 신화통신의 보도로 드러났다.

▦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이 개혁ㆍ개방 정책을 편 이래 사람들 뇌리에서 잊어졌던 '죽의 장막(bamboo curtain)'이 되살아난 순간이다. 죽의 장막은 2차 세계대전 후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서구 자유주의 진영에 취한 폐쇄적이고 비밀주의적 대외정책을 '철의 장막(iron curtain)'이라고 풍자한 윈스턴 처칠의 말을 중국에 원용한 것이다. 1949년 공산화된 중국이 비공산권 국가에 취한 배타적 정책과 장벽을 중국의 명산물인 대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중국이 정상국가로 G2 반열에 오르면서 걷혔던 장막은 폐기된 게 아니었던 셈이다.

▦ 김정은 부부의 방중 기간 중국 정부와 매체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 최고위급 방중설이 퍼진 27일까지도 "아는 바 없다"고 잘랐고 공산당 대외연락부는 각국 대사관의 문의가 빗발치자 아예 채널을 닫았다. 김 부부의 동선은 철통 경호 속에 전면 통제돼 중국매체엔 한 줄도 비치지 않았고, 포털사이트와 SNS의 검열도 강화돼 '차오셴(朝鮮)'이란 검색어마저 차단됐고 관련 게시물은 모두 삭제됐다. 언론의 오보가 잇따르고 우리나라와 미일 등 주변국 정보당국이 갈팡질팡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엊그제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된 사진와 영상을 보면 중관춘의 중국과학원 방문 등 김 부부의 행보가 거침없고 수행원과 경호원 등 숱한 눈이 그들을 지켜봤다. 그런데도 시종 보안이 유지됐으니 중국 체제의 폐쇄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반면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개방성을 강조해온 시진핑 2기의 첫 외교행사가 덮기와 감추기로 일관해 대국의 면모와 신뢰에 큰 흠을 남겼다는 비판도 많다. 황제반열에 오른 지도자에게 왜 '죽의 장막'이 필요했을까.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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