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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저 ‘메갈’을 잡아라”

입력
2018.03.30 12:3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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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임회사 직원이 트위터에서 페미니즘과 연관된 글에 ‘마음에 들어요’ 버튼을 눌렀다는 이유로 논란이 벌어졌다. 그 글 가운데 일부엔 ‘한남’ 등 한국 남성을 멸시하는 호칭이 포함되어 있었고, 게이머들은 이 직원이 ‘메갈’이라고 공격하며 게임 불매에 나섰다.

이 직원은 여성민우회 계정 등도 팔로우(트위터의 구독 개념)하고 있었는데, 공격에 나선 이들은 여성민우회 역시 메갈의 협력자이며 그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게임회사 대표는 직원에게 “왜 여성민우회 같은 계정을 팔로우했는가”를 직접 묻고 직원의 실명과 함께 그 문답 내용을 공개했다. 결론은 그 직원은 메갈과는 관계가 없으며,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해 실수를 했다는 것이었다.

최근 게임업계에 메갈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메갈이란 무엇인가? 한때 화제가 되었던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준말로, 이들은 세간의 여성 혐오 문화를 성별만 바꾸어 재현하며 이를 ‘미러링’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 운동은 가족은 물론 약자, 소수자마저 남성이라면 무조건 멸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하며 급격히 쇠락했다.

지금은 ‘워마드’ 등의 커뮤니티가 그 명맥을 잇고 있는데, 이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여성우월주의를 표방하고 패륜적 언행, 성소수자 멸시 등을 자행하고 있다. 한때 진보의 주목을 끌었던 새로운 조류였지만, 이젠 아니다. 만일 공인이나 유명인이 정말 이 같은 언행에 동조하고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다르다. 그 직원은 공인도 유명인도 아니었다. 그림을 그린 직원이었을 뿐이다. 일부 글에 한남 등 부적절한 표현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큰 맥락에선 그리 극단적인 주장이 아니었고, 직접 쓴 글도 아니고 유포한 것도 아니며 단지 ‘마음에 들어요’ 버튼을 눌렀을 뿐이다.

게다가 여성민우회는 호주제 폐지 운동 등 굵직한 여성 운동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역사 깊은 단체로, 한명숙 전 총리 등이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일부 행적에 문제를 제기할 순 있겠으나 단체 자체를 매도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그런데 여성민우회를 팔로우했다는 이유로 공격받고, 회사 대표에게 추궁 당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라 할 수 없다.

같은 날에는 한 액션 롤플레잉 게임의 원화가가 역시 메갈이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게이머들은 분노와 실망을 표하며 게임 불매에 나섰으나, 사실 그의 트위터에는 딱히 문제될 표현이 없었다. 다만 여성 인권, 성차별 문제를 다룬 글을 종종 소개했을 뿐이다. 그는 페미니즘에 동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메갈이라 불리며 공격당했다.

메갈이란 이름이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고 있다. 우스운 것은 정작 메갈리아는 이미 쇠락하여 그 실체마저 불분명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말 극단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냥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 지극히 온건한 페미니스트마저 메갈로 싸잡아 매도한다. 여성민우회와 같은 명망 있는 단체도 이 칼을 피할 수 없다.

이 소란이 대부분 공인이나 책임자가 공적인 자리에서 한 말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보통 직원이나 원화가 등이 트위터 등에서 개인 자격으로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메갈이란 단어가 페미니즘 전반을 공격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현실까지 고려하면, 이는 개인의 사상과 양심을 검열하는 데 이를 수밖에 없다.

이건 메갈리아가 옳다, 메갈리아를 지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엄밀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약자와 소수자를 멸시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선 안 된다. 그러나 또한 성차별과 여성의 인권을 얘기하는 모든 목소리를 모두 뭉뚱그려 메갈이란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고 적대해서도 안 된다. 메갈이라는 이름으로 보통 사람들의 사상을 검열하고 주홍글씨를 새기려는 행위에 반대한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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