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안동시 명품 안동포
값싼 중국산에 밀려 생산 줄어들다
대마 씨앗 슈퍼푸드로 유명세 타며
작년부터 재배면적 크게 늘어
화학품 원료 등 가능성 주목
응용 제품 개발로 외연 확장 나서
‘길쌈마을’ 체험관광명소 육성도
기능인력 양성으로 일자리 창출
생산,유통,체험 등 융복합산업 구상
의료용 대마 합법화 추진도 박차
안동포(安東布)는 경북 안동지역에서 생산하는 마직물로,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신라 왕실에 진상됐고, 화랑들도 즐겨 입었다고 한다. 경주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에서도 마직물이 멀쩡한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그 뛰어난 직조기술에 비춰 선덕여왕 때 베 짜기 대회에서 이름을 날린 안동포라는 주장도 있다. 조선시대 때도 진상품이었다.
안동포 원료인 대마는 대마초의 원료와 같다. 말린 대마 잎이나 대마씨 껍질을 피우면 환각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멀리할 것만은 아니다. 대마의 껍질로 실을 만들어 짠 베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베로 불린다. 대마 씨앗(hemp seed, 햄프시드)으로 짠 기름은 햄프씨유다. 이밖에 각종 의약품 생산 등 대마의 활용가치는 무궁무진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허가 없이 몰래 재배하면 불법이지만, 안동포는 모두 정부의 허가를 받아 엄격한 통제 하에 재배한다.
경북 안동시가 명품 안동포를 발판 삼아 대마산업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다. 안동포의 브랜드가치를 더욱 높이면서 대마와 관련한 다양한 연관산업을 육성해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25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삼베마을을 찾았다. 안동시청에서 승용차로 20분 가량 걸리는 이곳에선 지금도 간간히 베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한 시골마을이지만 약 200가구 400명 가량이 사는 제법 큰 마을이다. 경북도 무형문화재 1호 안동포 짜기 기능 보유자 우복인(87) 할머니와 전수조교 10명, 전수장학생 3명 등이 모두 이 마을에 있다. 일반 기능인을 포함해 40여 가구가 베틀을 가지고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베를 짠다.
구순을 눈앞에 둔 우복인 할머니는 명품 안동포의 산 증인이다. 그는 19살에 시집 와 22살 되던 해부터 베틀에 앉았다고 했다. 자식 교육을 위해 시내에 살던 시기를 빼고도 베 짜기 경력 48년이다. 그는 “시집오니 하고 있더라고.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다시 태어나면 안하고 싶어. 그래도 베 짜는 걸 보러 오는 사람들이 반가워.” 작고한 시어머니에 이어 지난 2006년 기능보유자가 됐다. 그는 요즘도 100년이 넘었다는 전통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곤 한다. 생존 최고의 안동포기술자라는 말엔 “금소리는 토질과 기후가 좋아 최고의 대마가 나오기 때문에 품질 좋은 안동포가 나오는 것”이라며 “우리 마을에 실력 좋은 안동포 기술자들이 여럿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우 할머니는 베 짜는 사람 치고 이가 성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직업병’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3월에 파종한 대마는 6월에 수확한다. 껍질을 벗겨 삼고 말리고 실을 뽑고 하면 2월. 실을 만들 때 섬유를 허벅지나 다리에 문지르는데, 그 부위가 시커멓게 변하기 일쑤다. 저질 중국산이 안동포로 둔갑한다는 게 가장 속상하다는 우 할머니. 그는 안동포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지자체와 정부가 적극 나서 줄 것을 소망했다.
안동시는 이 대목에 주목했다. 안동포는 수요확대에 한계가 있지만, 공예품이나 기타 화학품 원료 등으로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시는 기존 안동포의 브랜드가치를 제고하면서 관련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대마재배 기반을 확충하고, 안동포산업의 핵심인 기능인력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의료용 대마 합법화가 이뤄지면 각종 기능성제품 개발에도 나설 방침이다. 안동을 중심으로 영양 봉화 등 경북 북부권에 대마 생산 및 가공, 유통, 관광, 체험 등을 아우르는 융복합산업 육성을 구상 중이다. 우복인 할머니의 말처럼 안동시 임하면과 서후면 등은 최고 품질의 대마재배 적지로,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안동시 관계자는 "대마의 껍질은 안동포 재료일 뿐 아니라 생리대 커튼 단열재 원료이고 자동차브레이크용 소재에도 활용된다"며 그 동안 의복에 한정된 대마산업의 외연확장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큰길 건너 안동포 전시관에는 안동포는 물론 가방 쿠션 커튼 치마저고리 두루마기 등 삼베로 만든 각양각색의 제품이 관람객을 맞았다. 부산에서 왔다는 박지민(65)씨는 “안동포의 섬세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며 “공예품 중 가방과 남방을 구입했는데 빨리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상익(55ㆍ포항시)씨는 “안동포가 유명한 줄은 알았지만, 파종부터 한 벌의 의복이 탄생하기까지 100번이 넘는 복잡하고 어려운 공정을 거쳐 탄생하는 줄은 몰랐다”며 “중국산과 비교해 비싸다고만 생각한 것이 오판이었다”고 말했다.
안동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안동포 생산량은 300여필로 5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대마 섬유 중 가장 거친 부분으로 만든 무삼공예 등 공예품산업이 더 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값싼 중국산과 화장을 선호하는 장례문화의 변화 등이 주요인이다. 대마재배면적도 2008년 38.2㏊이던 것이 2006년엔 1.47㏊로 쪼그라들었다. 이러던 것이 지난해 4.1㏊로 크게 늘었다. 대마씨앗이 슈퍼푸드로 알려지면서 경북 상주시에 있는 이를 원료로 한 제품 생산업체가 계약재배한 때문이다.
기능인력 양성을 위해 ‘안동포 및 무삼(대마 섬유 중 가장 거친 것) 길쌈인력 양성교육’을 추진키로 했다. 전수조교와 이수자들이 직접 나서 이론과 실습 교육을 하는 시스템이다. 기술전승과 여성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구전으로 전해오는 베 짜는 기술을 전승하기 위해 ‘전통 안동포 무삼 총람’ 편찬사업을 추진하고, 한정된 수요를 극복하기 위해 혼방제품 개발 등 대중화 작업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무삼을 활용한 공예 활성화 지원사업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한복, 천연염색, 자수, 그림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전시회를 열어 대중 앞으로 다가선다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교육생들이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열어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음력 칠월 칠석 즈음에는 ‘안동포 직녀 베틀방’을 열어 삼 삼기, 베 짜기, 베틀 노래 경연, 견우와 직녀 마당극, 안동포 패션쇼, 향주머니ㆍ민화부채 공예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열 계획이다.
대마산업 육성의 핵심은 금소리에 조성 중인 안동포 전승을 위한 복합공간 ‘전통 빛타래 길쌈마을’이다. 전승교육관을 비롯해 대마체험장, 대마건조장, 길쌈광장, 편의시설 등을 설치해 누구나 찾아 보고 즐길 수 있는 대표적 체험관광명소로 육성할 방침이다. 지난 2월 이재갑 안동시의원이 ‘안동시 안동포 및 대마산업 육성ㆍ지원 조례’를 발의해 통과하는 등 제도적 기반도 구축됐다.
대마는 중국의 한의서나 동의보감 등에 적절하게만 사용하면 당뇨와 신경통 무좀 생리통 기혈보강 등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신이 주신 선물’로 전해져 온다. 대마껍질은 수의나 침구류 내의 기저귀 생리대 양말 임신복 스포츠웨어 수건 커튼 카펫 거즈 단열재 패널 등 1차 섬유로, 또 펄프 필터 부직포 자동차브레이크 등의 제품 원료로도 사용된다. 속대는 퇴비 천연플라스틱 바이오원료 에탄올 흡수제 천연비닐 벽지 건축자재 등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씨앗은 대마유 요리 고기능건강식품 천연화장품 천연비누 천연페인트 등 2만5,000여종의 제품 생산에 사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안동시는 대마산업 활성화를 위한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 새로운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이다. 동시에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추진키로 했다. 관련 법제화가 이뤄지면 경북바이오산업단지, 우수한약재유통지원센터 등을 기반으로 안동이 대마산업의 메카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제관 안동시전통문화예술과장은 “지역의 전문가, 생산농가 등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우리의 우수한 전통문화 보존을 넘어 새로운 대마산업 육성이라는 안동의 미래가치 창출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안동=권정식기자 kwonjs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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