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진상조사위서 확대 권고
적용 여부 놓고 교육계 공방
“집필기준 정부 관여 벗어나” 환영
“교실이 이념논쟁의 장 변질” 우려
교육부 “예체능부터 우선 도입”
정권 교체기마다 정치ㆍ이념적 논쟁의 중심에 서 온 ‘역사교과서’의 한계를 교과서 자유발행제 도입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가 ‘자유발행제 확대 권고’를 하고 나서면서 역사교과서에 이를 적용하는 것을 두고 교육계 공방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권 입맛대로 교과서’라는 오명을 씻을 거란 목소리와 이념 갈등을 더 부추길 거란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교육부는 최근 자유발행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자유발행제 체계 정립과 적용 범위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29일 “우선 2020학년도에 음악ㆍ미술ㆍ체육 등 예체능 과목 교과서를 중심으로 도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의 경우 영어(검정)를 제외한 주요과목이 모두 국정체제를, 중ㆍ고교 교과서는 검정과 인정 체제를 혼용(국어ㆍ영어ㆍ수학ㆍ사회 등 주요과목은 모두 검정)하고 있다. 대체로 정부가 저작권을 갖고 내용을 결정(국정)하거나 출판사ㆍ집필진이 저작권을 갖되 교육부 위탁을 받아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심사(검정)를 하는 방식이어서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크다.
이에 조사위는 전날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교과서 발행제도는 점차 인정제와 자유발행제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인정제는 교육감이나 출판사가 저작권을 갖고 각 시ㆍ도교육감이 심의하는 형태이고, 자유발행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맞는지, 위헌 요소가 없는지 등 최소한의 기준만 갖추면 출판사가 교과서를 낼 수 있는 형태다. 상대적으로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도입한 나라는 절반(17곳)에 달한다. 심의 절차를 아예 두지 않는 형태도 있다.
다수 역사학자와 교사들은 특히 정권에 따라 좌지우지돼 온 역사교과서에 자유발행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현행 검정제에서 역사교과서는 교육부와 평가원이 정하는 ‘집필기준’에 따라야 하는데, 교과서에 포함돼야 할 내용부터 사용 단어까지 세세하게 통제된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역사학자는 “집필기준을 마련하는 데 정부가 깊숙이 관여하기 때문에 자유발행제 필요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2009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낸 금성출판사에게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내용 수정을 압박해 출판사와 정부 간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태우 경기 양주고 역사교사는 “역사 과목 자율성이 굉장히 제한돼 있기 때문에 수업 중 다양한 자료나 학설을 활용하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교과서에까지 자유발행제를 적용할 경우 소모적인 갈등이 빈번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경기 한 고교 역사교사는 “자유발행제를 도입하면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왜곡돼 교육현장이 이념 논쟁의 중심이 될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또 내신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대입에 시험점수가 활용되는 체계 상 자유발행제가 도입되면 문제 출제나 평가 측면에서 일관성이 없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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