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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서울시장 되면 2,3년 내 집값 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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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서울시장 되면 2,3년 내 집값 잡겠다”

입력
2018.03.30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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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주거ㆍ보육 정책 정면으로 맞설 것

투기 못하는 공공임대주택 보급

朴 3선에 대선 노려… 무리한 욕심

강남 집값 상승 서울시 책임도 커

안철수 출마땐 朴 더 수세 몰려

권력과 재벌 유착했던 과거 대신

서민ㆍ시민이 이익 공유하는 시대로

현장 분위기서 승리 가능성 보여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중인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며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 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중인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며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 기자 inliner@hankookilbo.com

1987년 6월 서울시청 광장에 설 땐 목숨을 걸었다.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섰을 땐 정치 생명을 걸었다. 성공의 확신은 없었다. 싸우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죽는다는 절박함, 모든 걸 다 걸고 맞서면 세상은 바뀐다는 믿음뿐이었다.

6ㆍ13 지방선거 서울시장에 도전해 박원순 시장이라는 높은 벽을 넘어야 하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지하는 버팀목도 그 믿음이다. 우 의원은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본보 인터뷰에서 “가치와 비전을 가지고 서울시장에 도전하고 있다”며 “이번에는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선택을 받는 것으로 역사를 새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주거ㆍ보육 정책 공약에 집중하고 있다.

“박 시장은 당장 실적이 드러나지 않는, 삶의 본질과 맞닿는 문제와 잘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것, 새로운 것, 그리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만 했다. 유럽의 도시들에서 빛나게, 아름답게 했던 정책들을 서울시에 많이 옮겨왔다. 의미 있는 일일 수 있고, 시민들도 좋아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치는 좀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박 시장과 다르다. 지난 6,7년간 박 시장 정책 패턴을 보면 시정을 4년 더 끌고 가는 것은 서울시 행정 측면에서도, 서울시민들의 삶의 질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박 시장은 재선으로 소임을 다했단 말로 들린다.

“3선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 박 시장은 지금까지 주거, 보육, 일자리, 도시 물가 부문에서 눈에 띌 만한 일을 안 했다. 중산층이 관심을 기울이는 의제와 정책에 주로 힘을 쏟았다. 지금이 서울시장 교체 골든 타임이다. 향후 10년을 내다볼 때 새로운 발상,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시장이 되는 게 낫다.”

-지금과 다른 정책은 무엇인가.

“집값 안정이 먼저다. 구체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대량 보급하겠다. 서울의 경우 공공주택 비율이 7%에 그친다. 집값이 안정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투기 대상이 될 수 없는 공공주택 비율을 확 늘리면 시장 가격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지하철 역 상부, 역세권에 플랫폼 시티를 건설하겠다. 지상 역사로 단절된 지역을 연결하는 효과도 커 주변 지역 전체가 개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 한강변에도 명품 공공주택을 만들겠다. 서울 시민이라면 적어도 집 없는 서러움은 겪지 않도록 하겠다. 내가 시장이 되면 집값 문제는 2,3년 안에 잡을 수 있다.”

-박 시장도 도시재생을 핵심으로 한 주거 정책을 폈다.

“선거를 의식하며 문제가 생겼다. 예를 들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해 8월 집값 안정을 위한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박 시장은 정부 대책의 핵심이었던 초과이익환수제 시행을 목전에 두고 강남4구 아파트 재건축 허가를 모두 내줬다. 1년에서 1년 반 정도 걸렸던 전례와 달리 이례적으로 허가가 빨리 났다. 서울시장 3선 도전 의사를 공식화하는 시점에 내놓은 정책 결정이었다. 중앙정부와의 대표적 엇박자 사례다. 결과적으로 올해 초 대부분 언론이 ‘강남 집값 못 잡았다’를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욕은 문재인 정부가 다 먹어야 했다. 박 시장에게 3선 도전을 하려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라고 요구하는 이유 중 하나다.”

-유력 대선후보에게 대선 불출마 선언을 요구하는 건 과하지 않나.

“서울시장 3선을 하고 대통령 후보까지 되겠다는 건 욕심이다. 대선에 뜻이 있다면 서울시장 선거에 나오지 않고 곧장 대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2022년 대선을 치르려면 최소 1년 전에는 시장 직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이 차기 대선에 마음이 가 있는 게 문재인 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까. 그렇다고 박 시장이 본선 경쟁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 방송사 조사에 따르면 박 시장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57.5%였다. 보편적으로 교체 지수가 20% 이상으로 높으면 본선에서 위험하다고 본다.”

-안철수 국민의당 인재영입위원장의 출마 가능성도 주요 변수다.

“안 위원장이 출마한다면 박 시장은 더욱 수세적이게 된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 양보 프레임에 걸려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시장 선거뿐만 아니라 6ㆍ13 지방선거 전체 판 자체가 바뀐다. 촛불혁명과 적폐청산 이후 지방정부 정권교체를 위한 선거가 아니라, 야박한 박 시장이 3선을 해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변명해야 하는 선거가 되는 거다.”

-박 시장 교체 여론이 우 의원 지지로 바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과 가장 장 협력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 정치교체, 세대교체를 이룰 후보가 누구인가 따져본다면 그건 우상호가 될 거다. 내가 서울시장이 된다는 건 민주당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우상호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다음 당 대표, 그리고 당의 주역들이 물갈이되는 물꼬를 트는 의미가 있다. 시민들이 바람 하는 정치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

굵직한 한국 현대 정치사의 주역이지만 우 의원은 청년시절 시를 쓰는 문학도였다. 그러다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6ㆍ10민주항쟁을 이끌면서 정치와의 모진 인연이 시작됐다. 16대 총선에 도전했지만 낙선했고, 17대 총선에 승리했지만 재선에는 실패하는 등 정치적 부침이 컸다. 우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입당 동기”라며 “한번도 낙선해 보지 않았다면 지금 대통령을 한다고 나섰을 거다. 낙선했던 시간이 나를 돌아보게 하는 보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정치인생 중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언제인가.

“탄핵이다. 탄핵에 실패하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다짐했었다.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더 이상 정치를 할 이유가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87년 6월 항쟁 때는 옆에 섰던 이한열ㆍ박종철 열사가 죽어가니까, ‘나는 죽는다, 나는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싸웠다.”

-87년에는 민주화 열망을 현실로 일궈냈다. 지금은 어떤 비전을 담았나.

“담대한 변화를 말하고 싶다. 민주주의가 내 삶을 바꾼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정권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는 것까지는 쉬울 수 있다. 더 어려운 건 다음이다. 그 변화를 통해 내 삶이 바뀌어야 한다. 집값이 안정되고,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권력과 재벌이 유착해 자기들끼리 이권을 주고 받는 시대가 아닌, 시민들이 이익을 공유하는 시대로 바뀌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경제민주화의 기본적 함의도 빈부격차를 줄이고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게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을 통해 국민 모두의 삶을 균형 있게 만드는 것까지가 목표다. 지난 20년은 국회에서 법과 제도를 바꾸는 데 노력했다. 이제는 실제 정책을 집행하는 자리에서 도시 서민들의 삶을 바꿔나가고 싶다.”

-정치 이력에 비하면 인지도가 낮다.

“나 개인을 위한 정치를 안 했기 때문이다. 축구처럼 단독 드리블도 좀 하고, 실수도 하고, 그러면서도 골도 넣고 이래야 눈에 띄는 거다. 나는 손흥민 스타일이기 보다는 기성용 스타일이다. 하프 라인에서 전방으로 골을 배급해주면서 후방 수비라인의 끌어올려 팀의 전열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정치 스타일이다. 정치적 성과가 나도 우상호가 한 줄 모른다. 누군가 ‘우상호는 항상 대열의 끝을 주목한다’고 말하기도 하더라. 지금까지는 개인전 보다는 단체전에 주력해왔다면, 이제는 우상호라는 개인 정치인의 삶이 시작됐다. 촛불이 나에게 불을 질렀다. 탄핵정국에서 촛불시민의 명령을 받들면서 ‘어느덧 타성에 젖어 정치를 한 게 아닌가. 그저 300명 국회의원 중 한 명인 우상호로 산 게 아닌가’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촛불 때문에 내가 다시 불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내가 해보자, 늘 양보만 하고 살았지만, 이제 직접 해보자. 삶을 바꿔보자’라는 게 내 결론이다.”

-선거는 결과다. 이기는 게 중요하다.

“여론조사보다 더 정확한 건 정치인이 현장에서 느끼는 감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악수하고 눈을 마주쳐보면 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박원순 시장이 잘했지만, 이번에는 젊은 사람으로 바꿔보자’ 이게 내가 느낀 현장의 분위기다. 이번에는 내가 승리한다.”

■우상호는

1987년 6ㆍ10 민주항쟁과 2017년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 30년의 시차를 두고 서울광장 한복판에 섰던 우상호 의원은 의도했다기보다는 운명이 이끌었다고 말한다.

1962년 강원 철원서 태어난 우 의원은 자신을 촌놈이라 부른다. 연세대 국문과에 진학했고, 연세문학회 활동을 하며 시를 썼다.

군대를 다녀온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이 됐고, 그 무렵 후배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아 꽃다운 나이에 스러졌다. “이거라도 안 하면 죽는다. 싸우기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87년 서울광장 지도부에 발을 들였고, 최근 만들어진 영화 ‘1987’의 실제 주인공이 됐다.

정치를 시작했지만 볕들 날보다 궂은 날이 많았다. 2000년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야권 승리를 위한 불쏘시개가 됐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17대 총선에서 설욕을 했지만, 18대 총선에서 다시 낙선하며 정치인생의 부침을 겪었다.

민주당은 그를 붙박이 대변인으로 중용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문순 강원지사 후보 대변인을 맡아 2010년, 2014년 지방선거 승리에 일조하는 등 대변인만 8번 맡았다. 20대 국회 민주당 첫 원내사령탑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민적 염원을 관철시켰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됐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정혜지 인턴기자(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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