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ㆍ10 민주항쟁과 2017년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 30년의 시차를 두고 서울광장 한복판에 섰던 우상호 의원은 의도했다기보다는 운명이 이끌었다고 말한다.
1962년 강원 철원서 태어난 우 의원은 자신을 촌놈이라 부른다. 연세대 국문과에 진학했고, 연세문학회 활동을 하며 시를 썼다. 군대를 다녀온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이 됐고, 그 무렵 후배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아 꽃다운 나이에 스러졌다. “이거라도 안 하면 죽는다. 싸우기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87년 서울광장 지도부에 발을 들였고, 최근 만들어진 영화 ‘1987’의 실제 주인공이 됐다.
정치를 시작했지만 볕들 날보다 궂은 날이 많았다. 2000년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야권 승리를 위한 불쏘시개가 됐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17대 총선에서 설욕을 했지만, 18대 총선에서 다시 낙선하며 정치인생의 부침을 겪었다.
민주당은 그를 붙박이 대변인으로 중용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문순 강원지사 후보 대변인을 맡아 2010년, 2014년 지방선거 승리에 일조하는 등 대변인만 8번 맡았다. 20대 국회 민주당 첫 원내사령탑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민적 염원을 관철시켰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됐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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