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율 올리기’ 전략 사실상 실패
“정당성 없는 엉터리 선거” 비판
정부, 기권한 유권자에 ‘벌금 보복’
압델 파타 엘시시(64) 이집트 대통령이 26~28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90%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대선 국면 돌입 전후에 권력을 이용, 유력 경쟁 후보들의 출마를 막아 버려 애초부터 ‘엘시시 승리’라는 뻔한 결론이 예상됐던 데다 투표율마저 기대치를 훨씬 밑돌아 이번 선거의 정당성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9일 현지 언론을 인용한 AP,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이뤄진 예비 개표 결과에서 엘시시 대통령은 92% 안팎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집트 제2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88%가량의 득표율을 보이는 등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얻었다. 반면 엘시시 대통령과 겨뤘던 무사 무스타파 무사(66) 가드(내일)당 대표는 고작 3%의 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엘시시 대통령은 2022년까지 앞으로 4년간 더 이집트를 이끌 게 확정적이다. 권위주의 성향의 군인 출신인 그는 2013년 이집트 사상 처음으로 민주 선거를 거쳐 출범한 무함마드 무르시 민선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시켜 권력을 장악했다. 이듬해 대선에 후보로 나섰을 때 그는 97%의 득표율을 보이며 당선됐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투표율은 실망스러운 수치다. 이집트 당국과 엘시시 충성파 등이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음에도 불구, 절반에 한참 못 미치는 40.0~41.5% 정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는 2014년 대선 때의 47.5%도 밑도는 수준으로, 엘시시의 재집권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투표 거부’로 의사를 표시했을 공산이 크다. 외신들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뇌물과 협박, 금품수수, 당국의 개입 등이 기승을 부렸다면서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마저 지켜지지 않는 등 추태가 끊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대선은 이집트 사회의 균열을 그대로 드러냈다”며 “‘아랍의 봄’ 유령들이 이집트의 ‘엉터리 선거’에서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이집트 정부는 낮은 투표율을 야기한 국민들에 대한 ‘보복 조치’에도 나서고 있다. 이집트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하지 않고 기권한 유권자에게 500이집트파운드(약 3만원)의 벌금을 부과키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공식적인 대선 결과는 최종 집계가 마무리된 이후인 내달 2일쯤 발표될 예정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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