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위 최종결과 발표
2015년 이병기 주도 비밀 TF
3년 반 동안 위법적 밀어붙이기
새마을운동 ‘한계’ 등 18건 바꿔
박근혜 등 25명 검찰 수사 의뢰
차떼기 여론 조작, 비밀조직 운용, 예산 전용… 박근혜정부가 3년 반 동안 밀어붙인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민낯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7개월 간 진행한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국가기관을 총동원한 반헌법적ㆍ불법적 국정농단 사건”으로 규정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청와대는 2013년 중순부터 2017년 1월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승인할 때까지 국정화 기획, 준비, 실행 등 전 과정을 강행한 몸통이었다. 시작은 2013년 8월 우편향 비판에 직면한 교학사 교과서 사태였다. 박 전 대통령은 논란이 확산되자 검ㆍ인정 체제 강화를 위한 별도 조직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 때부터 청와대는 국정화 이외 대안을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검정체제 강화와 국정화 전환 두 가지 개선안을 제시했으나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은 국정화 결정만 종용했다.
국정화 추진 계획은 세월호 참사 여파가 잦아든 2015년부터 본격화했다. 핵심 조직은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도해 그 해 10월 구성된 비밀 태스크포스(TFㆍ3개팀 21명)였다. TF는 우호 여론 조성에 몰두했다. 국정화 작업에 책정된 예비비 44억원 중 절반이 넘는 24억8,000만원이 승인 하루 만에 홍보비로 사용됐을 정도였다. 청와대는 교과서 편찬 기준과 내용까지 일일이 통제했다. ‘새마을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서술한다’는 기준에서 ‘한계’는 ‘의의’로 대체됐고,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 내용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렇게 청와대 입맛대로 바뀐 내용은 18건이나 됐다.
일방적인 밀어 붙이기 탓에 위법ㆍ탈법 행위는 일상이 됐다. 조사위는 2015년 10월 전국역사학대회 당일 행사장에 난입한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의 집단행동을 청와대 지시로 교육부가 계획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판단했다. 이미 알려진 ‘차떼기’ 여론조작도 사실로 확인됐다. 국정화 행정예고 마지막날인 2015년 11월 2일 뭉터기 찬반의견서가 교육부에 제출됐는데 동일 주소가 무려 1,613건에 달했다. 인적사항란에 ‘이완용, 조선총독부’를 써내는 등 누가 봐도 허위 기재임이 분명한 의견서도 다수 발견됐다.
교육부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기는커녕 국정화 논리를 왜곡ㆍ홍보하는 나팔수 역할을 자처했다. 조사위 관계자는 “차떼기 의견서가 제출된 날 계수 작업에 동원된 교육부 직원이 본부 인원 3분의1에 해당하는 200명에 이를 만큼 사실상 청와대 하청기관이었다”고 말했다. 고석규(목포대 교수) 진상조사위원장은 “왜 이렇게까지 모든 시스템이 무너졌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조직문화를 민주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사위는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ㆍ이병기 전 비서실장,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서남수ㆍ황우여 전 교육부장관 등 관련자 25명 이상을 직권남용과 배임, 수뢰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하기로 했다. 조사위는 “박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불법 행위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교문수석실 지시가 그에게서 나왔다고 보고 수사의뢰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세종=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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