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마리 살처분… 추가 확진 없어
3㎞내 축산농 65곳 밀집 노심초사
예방적 살처분 예고에 반발 거세
경기ㆍ강원 접경만 A형 백신 접종
“당국이 상황 대비했어야…” 분통
“시키는 대로 예방 접종을 다하고 애지중지 키웠는데, 돼지가 모두 매몰 처분 당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애당초 백신이 A형(구제역 바이러스)인지, O형 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국내에서 처음 돼지 A형 구제역이 발생해 키우던 돼지 917마리를 모두 땅에 묻은 경기 김포시 대곶면 A농장 대표 B씨는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와 가족들은 26일 오후 구제역 발생 신고를 한 뒤 방역당국이 이동을 통제함에 따라 이틀째 농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28일 찾은 A농장 진입로는 김포시 방역차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차량이 막고 있었다. 차량 사이에 세워진 이동식 플라스틱 펜스에는 ‘출입금지’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농장 주위로는 접근을 막는 테이프가 둘러쳐져 있었다. 파란 페인트가 칠해진 분마사 등 축사는 모두 비워져 있었다.
흰색 방역복을 입은 지원본부 관계자는 “돼지 살처분 작업을 끝내고 사람과 차량 출입을 막고 있다”며 “언제까지 통제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A농장을 비롯해 김포지역 돼지 농가는 A형 구제역을 방어할 수 있는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다. 2010년과 지난해 한우와 젖소 농가에서 A형 구제역이 발생한 연천군과 차로 1시간~1시간 30분 정도인 가까운 거리인데도 단 한번도 A형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것이다.
A농장 3㎞ 이내에는 구제역 전염성이 높은 소와 돼지, 염소, 사슴을 키우는 농가가 65곳이 밀집해 있는데, 모두 구제역이 번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국내에서 돼지에 A형 구제역 백신을 접종한 곳은 파주 연천 등 경기와 강원 접경지역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가 A형 구제역 발생한 김포시 일대 7개 사육농가의 돼지 5,300여 마리를 예방적 살처분하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주민들은 “예방 접종에는 태만으로 일관하더니 뒤처리는 너무 앞질러 간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김포시 관계자도 “2011년 구제역으로 농가들이 피해를 본 사례가 있어 예방적 살처분을 섣불리 결정하기 어렵다”며 “정부와 농가간 견해 차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파주에서 돼지 5,000마리를 키우는 채정우(59)씨는 “구제역은 상황이 커지면 걷잡을 수 없는데, 돼지 A형은 발병한 적이 없고 확률도 낮다고 해서 백신을 선택적으로 배포했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비용이 더 들더라도 이런 상황을 예측해 백신을 배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생산자업체와 일부 농가들이 구제역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A형과 O형 구제역에 모두 효과가 있는 혼합(A+O형) 백신 접종을 외면하는 상황에 우려를 나타냈다. 생산자업체 등은 일부 돼지에서 백신 접종 후 살이 흐물흐물해지는 등의 이상육 증상이 나타나고 혼합 백신이 더 비싸다는 이유로 O형 단가 백신 접종을 선호한다. 혼합 백신은 개당 1,700원으로, 단가 백신보다 300원 비싸다. 대규모 농가(돼지 1,000두 이상)는 백신 비용 절반을 부담한다.
유한상 서울대 수의과 교수는 “국내에서 소 A형 구제역이 발생했고 가까운 중국에서 돼지 A형 구제역이 발생한 만큼 돼지에도 A형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고 연구자들이 꾸준히 얘기해왔다”라며 “구제역은 매우 위험한 전염병으로, 지금이라도 혼합 백신 접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류엔자(AI)와 김포 구제역 차단방역 강화를 위해 특별교부금 10억원을 긴급 지원키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