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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 사회-성 해방 동일시... 성범죄 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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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 사회-성 해방 동일시... 성범죄 관대"

입력
2018.03.2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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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과거 나꼼수 비키니 사건이 드러낸 것도 바로 이런 문제였다. 진보주의를 표방한 매체에서 여기에 반발하는 여성의 항의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복기해 보면, 이들 역시 성욕에 대한 ‘쿨한 태도’를 진보주의의 일부로 간주하고, 소외된 여성의 목소리를 진보적 가치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였다.”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문예지 ‘문학사상’ 4월호에 기고한 글 ‘미투 운동, 어떻게 볼 것인가?’의 일부다. 이 교수는 한국의 ‘미투(#Me Too)’가 진보 진영에 더 큰 타격을 입힌 이유로 진보주의자들의 비뚤어진 성 해방 담론을 꼽았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사회 해방과 성 해방을 동일시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범죄에 관대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성’은 자연의 일부이거나 아니면 해방을 감당하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물에 지나지 않는다. 성욕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지닌 ‘여성’은 성 해방을 통해 사회 해방으로 나아가야 하는 열등한 존재에 불과하다.”

이 교수는 ‘나꼼수(나는꼼수다)’가 여성을 다룬 태도를 예로 들었다. 나꼼수는 방송인 김어준씨와 김용민씨, 정봉주 전 의원, 주진우 기자가 2011년부터 약 2년간 진행한 팟캐스트 방송이다. 2012년 구속된 정봉주 전 의원을 응원하는 여성의 비키니 사진이 도마에 오르자, 나꼼수는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든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1960년대 이후 ‘선진문화’라는 이름을 달고 수입된 성 해방 담론은 남성의 성욕을 ‘자연스러운 것’ 또는 ‘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남성 지배를 더 공고하게 만들고 여성을 비롯한 소수 약자는 소외시켰다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여성이라면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었을 여성 비하 또는 여성 혐오는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토대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비정상적인 존재’로서 조직의 분위기를 깨는 잡음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이런 성 해방에 부정적이거나 더 나아가서 해방의 문제에 내재한 여성의 소외를 지적하면 ‘촌스러운 태도’라고 비난을 일삼는 일도 일어난 것이다.” 이 교수는 이윤택 연극연출가와 빈민운동가로 이름이 알려진 목사의 예도 들면서 “진보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이들이 성범죄에 대해 일정하게 공유하는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성적인 해방을 사회적 규범을 깨는 파격의 퍼포먼스로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썼다.

박정희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방송인 김어준(왼쪽부터)씨와 주진우 기자, 김용민씨가 2015년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방송인 김어준(왼쪽부터)씨와 주진우 기자, 김용민씨가 2015년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교수는 “미투 문제를 ‘공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오류를 되풀이하는 일”이라며 “특정 ‘진영’을 방어하기 위해 운동에 저항하는 것은 미투 운동의 긍정성을 왜곡하고 축소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어준씨를 비롯한 일부 진보진영 인사는 미투가 ‘공작에 이용될 가능성’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논란을 불렀다. 이 교수는 “미투 운동이 진보에 대한 ‘공작’이라고 모종의 음모를 내세우는 이도 있다. 미투 운동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한다는 발상은 이 운동에 내재한 정치성의 본질을 간과한 생각일 뿐”이라며 “미투 운동은 특정 진영에게 유리한 사태라기보다 기존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대중의 분출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진보주의가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문제를 불평등의 관점에서 제기했던 것처럼, 그 진보의 가치를 체득한 여성들도 진보주의에 내재한 남녀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사물화 해 온 진보주의 관점들을 재구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또 “미투 운동의 분출을 한국의 진보주의가 어떻게 수용하고 자기 혁신의 계기로 삼는지 여부에 진보의 운명이 걸려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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