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낮 12시40분. 정무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오후 2시로 예정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나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법원에 전했다. 한때 촉망받던 정치인에서 구속 성폭행 피의자로 전락할지 모를,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마땅할 심사장에 나가지 않겠으니, 그냥 서류로만 판단해 달라는 얘기였다.
법원은 거부했다. 형사소송법상 ‘도망 등의 사유로 심문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구인한 뒤 심문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겠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에 구인영장을 발부했으니, 검찰이 공권력을 동원해 데려와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관행에 따르겠다’며 구인장을 반환, ‘할 일’을 포기했다. 법원은 이에 심문 날짜를 28일로 미루면서 구인장을 다시 발부했다. 검찰과 법원으로 공이 오가는, 일대 혼란이 벌어진 셈이다. “피의자의 불출석만큼이나 판사의 서류심사 거부도 의외”라는 뒷말이 나올 정도다.
법조계 해석은 다양하다.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 반면, “피의자에게 직접 소명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의 법원 영장심사를 포기한 피의자를 굳이 불러내 얻을 실익이 있느냐”는 되물음도 만만치 않았다. 안 전 지사 측 역시 “피의자 의사에 반하는 상황”이라고 섭섭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법원이 지키고자 하는 원칙을 매도할 생각은 없으나 원칙도 예외 없이 지켜질 때에야 비로소 제 구실을 한다. 특히나 법원이 계속 지켜왔던 ‘원칙’도 아니다. 무수히 많은 피의자가 영장심사에 나오지 않고, 서류만으로 심사를 받아 구속 또는 불구속 결과를 받아들여 온 게 엄연한 현실이다.
무엇보다 불과 며칠 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서류심사를 해 주고, 안 전 지사에게는 왜 안 된다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세간의 의문을 법원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피의자 직접 심문 필요성에 따라 판단한다”는 것이 그나마 내놓은 답인데, 고개를 끄덕일만큼 명쾌하지는 않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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