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집권기간 8차례 방중
궁지 몰리거나 결단 내리기 전
열차로 중국 찾아가 조언 구해
김정은 집권 이후 첫 방중
대중외교 변화 기폭제될지 관심
냉랭한 북중 관계가 해빙기를 맞을까. 중국과 형제처럼 지내며 밀월관계를 과시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7년이 지나도록 중국과 긴 냉각기를 지속해왔다. 하지만 26일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대중외교 스타일을 바꾸는 기폭제가 될지 주목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권 기간 8차례 중국을 찾았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궁지에 몰리거나 중요한 결단을 내리기에 앞서 어김없이 ‘형제국가’인 중국을 방문해 조언을 구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을 불과 한달 여 앞둔 2000년 5월에도 비밀리에 전용열차를 이용해 베이징으로 향했다. 김정일은 방중 기간 댜오위타이 국빈관에 머물며 장쩌민 주석 등 중국 고위급 지도자들과 연쇄 접촉했다. 김정일은 2004년에는 3차 북핵 6자 회담을 앞두고 북미 간 신경전이 과열되자, 또다시 중국을 찾아 돌파구를 모색하기도 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유엔 안보리가 부쩍 대북 제재의 수위를 높이자 김정일은 ‘믿을 건 중국밖에 없다’고 항변하듯 중국에 매달렸다. 이듬해까지 4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3번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처럼 북중 관계가 눈에 띄게 가까워지면서 후진타오 주석은 “북한의 당 대표자회 정신을 높이 받든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북한의 3대 세습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북한은 중국을 국제사회의 중재자이자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큰 형으로, 중국은 북한을 보듬어야 할 동생으로 보면서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돈독하던 북중 관계는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하면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7일 “김정은도 집권 이후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하려 노력했지만 중국이 ‘비핵화’ 조건을 내걸면서 성사되지 않았고 자연히 관계가 틀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내 친중 세력을 모두 제거하며 중국의 입김을 차단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2012년 리영호 총참모장 제거, 2013년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처형, 지난해 2월 이복형 김정남 암살까지 ‘피의 숙청’이 지속됐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 집권 7년 동안 공식 대중 외교 활동은 공산당 대표단을 접견한 4회가 전부다. 지난해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특사로 방북했던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도 끝내 김 위원장을 접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김정은이 ‘은둔형 외톨이’를 고집하며 중국을 외면하는 사이, 중국이 대북 압박에 동참하면서 사이는 더 틀어졌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을 계기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참여했던 중국은 지난해 8월부터 북한산 수산물을 금수 조치했고, 12월부터는 섬유제품의 수입도 금지했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중국의 대북 교역액은 3억 1,2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수출은 23%, 수입은 80% 가량 급감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