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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의 또 다른 얼굴 "관객을 선악 딜레마에 빠뜨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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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의 또 다른 얼굴 "관객을 선악 딜레마에 빠뜨리고 싶었다”

입력
2018.03.27 13: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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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은 “영화 외에는 무엇도 끼어들지 못할 정도로 집중도 높은 현장 분위기 때문에 ‘7년의 밤’이 더 특별하게 기억된다”며 “앞으로 활동에도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장동건은 “영화 외에는 무엇도 끼어들지 못할 정도로 집중도 높은 현장 분위기 때문에 ‘7년의 밤’이 더 특별하게 기억된다”며 “앞으로 활동에도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면도로 ‘M자 탈모’ 싹 달라진 외모

딸도 아빠 사진 몰라보고 “괴물”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남자와

딸 잃고 복수 나선 아동학대 남자

누가 더 나쁠까 관객에 질문 던져

“잘했든 못했든,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여한이 없어요.” ‘진인사대천명’을 웅변하는 듯한 표정으로 배우 장동건(46)이 후련한 웃음을 지었다. 영화 ‘7년의 밤’(28일 개봉)을 세상에 내놓는 감회가 남다르기는 할 테다. ‘시간’이 아닌 ‘세월’을 쏟아 부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촬영에 매달린 기간만 7개월, 그 이후로도 만듦새를 다듬는 데 2년 가까이 더 걸렸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장동건은 “영화에 선택되지 않은 장면들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라며 “인생작은 아니어도 가장 열심히 연기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고 자평했다. 영화를 보면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남 배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악마적 인간’이 관객을 맞이한다.

정유정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7년의 밤’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남자 최현수(류승룡)와 그로 인해 외동딸 세령(이레)을 잃고 복수에 나선 남자 오영제(장동건)의 이야기를 그린다. 오영제의 복수에 동기가 된 건 분명 부성애이나 딸을 잔인하게 학대했던 오영제는, 배우가 납득하기도 관객에게 설득하기도 곤란한 캐릭터다. 원작에선 사이코패스 살인마였다.

원작 팬을 자처하며 “영화화된다면 오영제 역을 맡고 싶었다”던 장동건도 “감정 몰입을 위해 딸을 학대하는 상상만 해도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딸을 지극히 사랑하던 아버지의 복수라면 쉬웠을 거예요. 오영제는 다르죠. 그 심리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고민이 컸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찾은 답은 오영제의 복수가 자기 세계를 침범하고 파괴한 사람에 대한 응징이라는 거예요. 그 안에 부성애도 있었을 겁니다. 다만 그 방식이 잘못된 거죠.”

딸을 잃고도 무표정 속에 분노를 감추고 있던 오영제는 딸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굿을 지켜보다 광기를 폭발시킨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딸을 잃고도 무표정 속에 분노를 감추고 있던 오영제는 딸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굿을 지켜보다 광기를 폭발시킨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싹 달라진 외모는 오영제를 단박에 각인시킨다. 이마 양쪽을 면도해서 M자 모양 탈모를 연출했다. 눈빛은 분노와 독기를 내뿜는다. 장동건은 “처음엔 탈모까지 해야 할까 싶었는데 테스트 분장을 해보니 내 자신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더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촬영 후 오랜만에 만난 현장 스태프는 원상 복구된 장동건의 모습을 오히려 어색해했다고 한다. “한창 영화를 찍을 때 잘 나온 현장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에 깔아놓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곤 했어요. 당시 세 살이던 둘째 딸아이가 그 사진을 보고 ‘괴물 괴물’ 하더라고요. 아빠인 줄 몰라본 거죠.”

최현수와 오영제의 비뚤어진 부성은 극단적 선택으로 치닫는다. 선한 사람의 절박한 동기가 악한 결과를 초래하고 악한 사람의 행동엔 정당성이 부여되는 아이러니가 관객을 딜레마에 빠뜨린다. 인간의 심연에 도사린 악마성을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도덕적으로는 오영제가 나쁘지만, 법적으로는 최현수의 책임이 무거워요. 누가 가장 나쁠까. 인간의 선악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에요.”

같은 질문을 장동건에게도 던져 봤다. “성선설을 믿고 있지만, 요즘 사회 분위기를 보면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어릴 때 학교에서 ‘흉악한 사람이라도 아이가 차에 뛰어들면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예시로 성선설을 배웠는데, 그건 그냥 반사신경 아니었나 싶어요(웃음).”

영화에서는 성악설의 대변자 같은 ‘센 캐릭터’를 주로 만났다. 거친 액션도 많았다. 가깝게는 ‘브이아이피’(2017)와 ‘우는 남자’(2014)가 있고, 멀게는 ‘친구’(2001)가 있다. “오영제보다 더 극악한 인물로 나온다”는 ‘창궐’도 지난달 촬영을 마쳤다. ‘7년의 밤’에선 격투 장면을 찍다가 귀를 다쳐 40바늘 꿰매기도 했다. 그는 “영화에선 유독 선 굵은 역할을 많이 제안 받는다”며 “개인 성향도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인물에 끌리는 편”이라고 했다.

장동건은 “원작 소설의 팬이었는데 영화에도 출연하게 돼 신기했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장동건은 “원작 소설의 팬이었는데 영화에도 출연하게 돼 신기했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엔 다작 행보가 눈길을 끈다. 다음달 방영되는 KBS2 드라마 ‘슈츠’ 촬영으로 요즘 한창 바쁘다. 드라마 출연은 SBS ‘신사의 품격’(2012) 이후 6년 만이다. 미국의 인기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슈츠’는 전설적인 변호사와 가짜 신입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일은 바빠졌지만 어느 때보다 즐겁고 편안하다”고 했다.

얼마 전 1인 기획사를 설립해 독립한 것도 그에게 여유를 가져다 준 듯하다. “내가 움직이는 데 조금 더 수월하겠다는 생각이었지, 거창한 사업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시도하려고요. 물론 책임도 제가 져야 하겠죠.”

‘사장님’ 장동건은 예술영화에 관심이 많다. ‘캐롤’(2016)과 ‘타인의 삶’(2007) 등 아끼는 영화들을 떠올린 그는 “내가 직접 발굴한 좋은 영화를 소개해 볼 생각”이라며 “해외영화를 수입하는 방식도 있고, 더 나아가 영화 제작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내친김에 연출 도전까지 권하니 손사래를 치며 껄껄 웃는다. “‘7년의 밤’ 촬영하면서 추창민 감독을 가까이서 봤잖아요. 저는 절대 그렇게 못할 거 같아요.”

배우로서 당장의 목표는 ‘7년의 밤’을 관객에게 잘 알리는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로 일찌감치 ‘1,000만 배우’가 됐지만, 최근 출연작들은 기대를 밑돌았다. 흥행 기대작이었던 ‘마이웨이’(2011)가 214만명, ‘브이아이피’가 137만명에 그쳤고, 다른 영화들은 100만 고지를 넘지 못했다. “흥행이 전부는 아니지만 영화가 외면 당하면 그 의미도 퇴색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상업적인 성공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7년의 밤’은 많은 분들이 고생한 작품이에요. 작은 보답이 있었으면 합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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