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봄바람이 불다가 천천히 파도가 치다가 나중엔 태풍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슴네다.” 1999년 북한 평양시 봉화예술극장. 북한 남성 안내원은 가수 최진희(61)가 노래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자 ‘사랑의 미로’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최진희는 26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엔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클래식하게 부르는 가수들이 많아 제 노래를 색달라 했던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최진희는 내달 1일과 3일 동평양대극장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각각 열린 남북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 ‘봄이 온다’에 참여한다. 1999년과 2002년, 2005년에 이어 13년 만의 방북이다. 북한에서 네 번이나 공연하는 가수는 최진희가 유일하다.
북한의 대표적 생활가요인 ‘반갑습니다’나 ‘휘파람’과 비교하면 ‘사랑의 미로’가 지닌 멜로디의 변화와 최진희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더 극적이다. 북한 주민들도 ‘사랑의 미로’를 즐겨 듣는 눈치였다. 최진희는 “(99년 공연 당시)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일주일 정도 묵었는데 종업원들이 ‘사랑의 미로’를 흥얼거렸다”며 “당시 공연이 북한에서 방송됐는데 시청률이 99%가 나왔다더라”고 했다.
‘사랑의 미로’는 최진희가 김희갑 작곡가에게서 선물로 받은 노래다. 김 작곡가는 부인인 양인자 작사가와 함께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과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를 비롯해 김국환의 ‘타타타’ 등 숱한 명곡을 만들었다. 최진희는 “어려서 김 작곡가님이 만든 ‘너의 사랑’(1974)을 너무 좋아했다”며 “김 작곡가님께 이 곡을 제가 다시 부르고 싶다고 했더니 ‘새롭게 만들어주겠다’고 해 받은 노래가 ‘사랑의 미로’”라고 했다. 야간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던 최진희는 김 작곡가가 만든 ‘그대는 나의 인생’(1983)으로 데뷔했다.
‘사랑의 미로’는 김정일(1942~2011) 국방위원장의 애창곡으로 유명하다. 최진희는 첫 방북 때 특급 의전도 받았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려 이동할 때 저만 따로 벤츠를 탔다”고 했다. 2002년 두 번째로 북한을 찾았을 때는 희망도 봤다. 최진희는 “처음엔 우리나라에서 북한에 갈 때 중국을 경유해 가야 해 이틀이 걸렸다”며 “2002년엔 서해 직항로로 비행기를 타고 30분 만에 평양에 도착해 좋은 때가 곧 오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진희는 이번 북한 공연에서 ‘사랑의 미로’를 비롯해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등을 부른다. 2002년 북한 공연에서 “서울에서 온 최진희입니다”라고 소개한 그는 이번엔 “사랑합니다”라고 북한 주민들에게 인사할 생각이다.
‘봄이 온다’ 공연에는 최진희를 비롯해 가수 조용필 이선희 백지영 정인 서현 알리, 윤도현이 속한 밴드 YB 등이 출연한다. 공연은 10대부터 60대까지, 트로트와 K팝 등 세대와 장르를 뛰어넘는 가수들이 출연해 꾸리는 방북판 ‘열린 음악회’가 될 예정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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