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대미 통상전쟁에서 한국에 사용했다가 재미를 봤던 여행금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유학생을 포함한 연간 500만명에 육박하는 중국인의 미국 방문객 규모와 씀씀이가 미국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미국의 관광시장 규모가 워낙 커 실효성을 두고는 의문이 일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6일 논평기사에서 미중 간 무역전쟁과 관련한 중국의 보복 수단을 언급하면서 “미국행 단체관광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무부 부부장(차관급) 출신으로 경제ㆍ통상분야 싱크탱크인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웨이젠궈(魏建國)도 “중국 정부 차원에서 미국 관광산업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간 1억3,000만명을 돌파한 해외관광객을 무역전쟁의 주요 무기 중 하나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미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수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2010년만 해도 100만명에 미치지 못했던 중국인 방문객 수는 2016년 300만명을 넘어섰다. 매년 큰 증가폭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올해는 50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매년 춘제(春節ㆍ설)와 국경절 연휴 때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라스베가스 등 미국 주요도시의 공항과 인터컨티넨탈, 힐튼, 메리어트 등 고급호텔들이 내부를 중국풍으로 꾸미거나 중국어 서비스 인력을 대폭 충원하는 건 관광산업에서 중국 의존도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숫자 못지 않게 중국인 관광객의 씀씀이도 대단하다. 2016년 기준으로 미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이 지출한 소비액은 330억달러(약 36조원). 다른 국가 여행객보다 1인당 소비액이 50%나 많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 우선주의’의 여파로 전체 관광객이 감소 내지 정체 상태인 미국의 사정을 감안하면, 중국인의 여행 보이콧이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논리다.
물론 반론도 나온다. 중국 의존도가 컸던 한국에만 통했을 뿐 관광시장이 한국보다 훨씬 큰 미국에는 아무 영향도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지난해 상반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반 이슬람’ 조치에 반발한 중동 부유층의 미국 관광이 30% 가량 급감했지만 전체 매출은 3% 감소에 그쳤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미국을 찾는 관광객은 전 세계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중국이 단체관광을 제한하더라고 타격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패턴으로 볼 때 주요 공항 면세점의 매출 일부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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