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지도자들은 동성애나 성평등 문제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이미 그런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있다.”
성지주일(부활절 한 주 전 일요일)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현지시간), 바티칸에 모인 수백 명의 청년 가톨릭 신도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전달한 16쪽짜리 보고서의 내용 일부다.
기존 교리와는 배치되는, 그러나 사회 변화와 함께 더 이상 과거의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게 된 현안들에 대해 교회가 이제는 침묵을 깨고 본격적인 논의와 발언을 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가톨릭 교계가 애써 외면했거나 따라잡지 못했던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한 뒤, 젊은 세대와의 적극적 소통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변신을 꾀해야 한다고 촉구한 셈이다.
25일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세계 각국의 천주교주교회의와 대학, 종교 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바티칸 주최 콘퍼런스에 참석한 300명의 청년 신도들이 1주일간의 토론을 거쳐 작성했다. 1만5,000여명의 젊은이가 온라인으로 제출한 의견들도 보고서에 반영됐다고 WP는 전했다.
직접적으로 ‘개혁’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보고서 내용 하나하나를 뜯어 보면 가톨릭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여성들도 가톨릭 지도부에 더 완전하게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성직자(priest)’는 남성들만 될 수 있고, 여성들에겐 오로지 ‘수녀’의 길만 허용하는 지금의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일부 젊은 여성은 자신의 재능을 (사제가 되어) 교회에 바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 결과적으로 소외감을 느낀다”며 “교회 내에는 여성의 ‘역할 모델’도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변화하는 첨단 기술에 맞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보고서는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으로서 기술 발전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기술 발전을)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온라인 중독과 싸우고 책임감 있게 기술을 사용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교회에 대한 무관심이나 비판, 거부 성향을 보이는 젊은이들과의 소통 방안 모색 ▦최근 성직자 성추행 스캔들 등에 대한 솔직한 인정 등도 시급한 과제로 제시됐다.
향후 가톨릭이 취해야 할 개혁 노선이 명확하게 제시되진 않았다. 예컨대 현재 가톨릭에서 원칙적으로 금지된 인위적 피임이나 낙태, 혼전 동거 등과 관련, 참석자들 간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WP는 “도달 불가능한 도덕적 기준만이 신실한 가톨릭적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으로 여겨져선 안 되며, 교회는 더 많은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게 젊은 신도들의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보고서는 칠레 후안 바로스 주교의 아동 성추행 묵인 의혹, 이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비호 발언 논란 등 최근 가톨릭 교계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5일 바티칸의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성지주일 미사에서 젊은이들을 향해 “청년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유혹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침묵하지 말고 (너희들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라”고 호소했다.
김정우 기자 wookiom@hankookilbo.com
한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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