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플로리다주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총기규제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202년 역사를 쌓아 온 유서 깊은 총기 생산 기업 레밍턴이 25일(현지시간)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판매 부진과 총기산업에 대한 부정적 압력을 견디지 못한 탓이다.
레밍턴을 산하에 둔 지주회사 레밍턴 아웃도어는 이날 델라웨어주 파산법원에 연방파산법 11조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레밍턴의 부채가 청산되지만, 경영권은 채권자에게 넘어간다. 레밍턴의 부채는 최대 5억달러(약 5,420억원)로 추산된다.
레밍턴은 1816년 뉴욕에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총기 생산 기업 중 하나다. 한국 해군 특수부대도 사용한 바 있는 ‘레밍턴 870’ 산탄총, 미국 역사상 3번째로 많이 팔린 ‘레밍턴 700’ 소총의 제작사다. 2007년 사모펀드 서버러스(Cerberus)에 인수됐는데, 당시 서버러스는 레밍턴과 부시마스터ㆍ말린 등 총기 브랜드 여럿을 묶어 ‘프리덤 그룹’이라는 대형 총기 전문기업을 설립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후 악재가 쏟아지면서 레밍턴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2010년 미국 CNBC는 레밍턴의 간판 상품인 ‘레밍턴 700’ 소총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는데도 발사되는 치명적 문제가 확인됐음에도 기업이 무려 60년간 무시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서버러스는 프리덤 그룹의 기업공개(IPO)를 포기했다. 2012년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레밍턴의 ‘부시마스터 AR-15’ 소총이 사용된 뒤에는 투자자들이 서버러스에 레밍턴 경영에 손을 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샌디 훅 사건 피해자 9명의 유족들은 레밍턴을 상대로 “민간용에 맞지 않는 무기를 판매했다”며 소송을 제기해 현재 코네티컷주 대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과잉 재고도 레밍턴의 파산을 재촉했다. 2016년 민주당 버락 오바마 정권 때 황금기를 누렸던 총기산업계는 역설적으로 총기 규제에 미온적인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매출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총기규제 우려가 사라지면서 총기 애호가 중심의 ‘사재기’ 행태가 사라진 탓이다. 레밍턴의 2017년 매출은 전년 대비 30% 이상 줄어든 약 6억달러였다.
정부 규제 압력은 줄었지만 일부 금융ㆍ유통기업들이 ‘자율 총기규제’에 나서고 있는 점도 레밍턴에게는 타격이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시티그룹은 지난주에 “신원 보증이 완료된 고객들에게만 총기를 판매하는 총포상에게만 금융거래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프랜차이즈 소매업체 프레드 마이어는 “총기 판매를 완전히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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